2번의 파양을 견디고 우리 곁에 와준 우리집 아가 블리
"저희 집 애가 알러지가 심해서요. 오늘 못 오시면 다른 집에 보내야 해요."
새벽에 올라온 파양글이었다. 공고가 올라온 지 6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오늘 당장 데려가지 않으면 아이를 다른 집에 주겠다고 다짜고짜 엄포부터 놓는다. 아이가 예뻐서 그런지 인기가 많단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6개월 동안 수십 장의 입양 지원서를 썼다. 지원하고 떨어지고, 또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수 차례 반복하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임시보호자나 구조자 때문에 당황했던 적은 있었지만, 이건 너무 쉬워서 황당했다. 내 이름이 뭔지, 몇 살인지,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직업은 무엇이며 입양을 결심한 이유가 있는지 등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애가 강아지 알러지가 심하니 하루 빨리 강아지를 데려갈 사람을 찾는다고만 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서울에서 부랴부랴 수원으로 향했다. 빨리 가야한다는 마음이 절실해서 그런지 가는 길에 잠시 차에서 내려 쉬었다 가야할 만큼 긴장했다. 차는 또 왜 이렇게 막히는 지 도착하기까지 시계를 천 번은 더 본 것 같다. 새하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깔끔한 집, 초등 여아와 중등 남아가 있는 4인 가구가 사는 집. 그곳에서 처음 블리를 만났다. 앙앙 짖어 대다 금세 내 냄새를 맡더니 곧바로 장난감을 물고 나에게로 오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인은 구름이라고 불렸던 블리를 식탐이 많고, 분리불안과 짖음이 심한 아이라고 소개했다. 잠시 집을 비울 때마다 하도 강아지가 짖어대서 민원 때문에 포기하기로 결정했단다. 이미 한 번 파양 당한 아이를 데려온 지 겨우 2주만에 포기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인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강아지를 분양받았다가 다시 출근하게 되어서 파양했다고 전해들었다.
책임비 40만원을 그 자리에서 입금해주고 새하얀 솜사탕을 가슴에 꼭 껴안고 나왔다. 아이의 이름은 블리로 지었다. '더 없는 행복'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Bliss(블리스)에서 따왔다. 윤블리, 그 자체만으로 사랑스럽기도(lovely) 해서 블리이기도 하다. 차 안에서 벌벌 떨다 모든 걸 포기한 듯 풀썩 주저 앉은 후 눈물을 흘러던 블리를 잊지 못한다. 그때 흘린 눈물이 너무 진해서인지 지금도 블리의 눈 주변은 여전히 빨갛고, 눈물자국은 아무리 사료를 바꾸고 눈물약을 먹여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애완견 대신 반려견이라 부르고, 한국인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돈으로 반려동물을 사고판다. '강아지 공장'이라고 불리는 불법 번식장도, 어린 강아지를 장식장에 가둬둔 펫샵도 흔하기만 하다. 그리고 쉽게 구매한 만큼 버리기 또한 쉽다. 부디 사기 전에도 버리기 전에도 내 품 안에 있는 아이가 숨을 쉬고 있는 생명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블리야, 언니랑 오빠랑 엄마랑 아빠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험한 길 잘 버티고 우리집에 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