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진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렵지만
런던 사는 친구 '춤추는 복숭아'('춤복')가 서울에 왔다.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다.
오후엔 친한 동생 '눈이 부신 토끼풀'('토끼풀')이 신촌에 놀러 왔다. 토끼풀이 이직에 도전하면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나도 이동하려는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하니 우리가 매번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가는 게 잘 맞는다고 신기해했다. 한 달여간 고민과 혼란의 시간을 가지며 지쳐버린 것까지 비슷했다. 토끼풀은 1-2년 전을 생각해 보면 지금과 별 다를 게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겠느냐며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는 우리 성향과 계속 같은 곳에서 안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토끼풀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거라고. 토끼풀 말에 동의했다. 다음 1-2년 뒤를 생각해 보면 환경을 바꿔서 자극과 동기를 만드는 편이 더 맘에 든다. 토끼풀과 나는 적당한 긴장과 새로움이 있는 곳에서 자극받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제 느낀 우울함을 토끼풀에게 말하자 그는 전환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내가 워홀을 떠나는 것에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그렇다. 어제는 꽤나 우울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이해받거나 지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 삶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꼭 앞으로의 계획이 모두 명확해야만 어떤 도전과 결정을 할 수 있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사는 걸까? 공직이나 월급쟁이가 아니면 틀린 걸까? 유동적인 프리랜서 직업, 나이 듦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는 것 같아 긍정적인 멘탈을 유지하기가 좀체 어려웠다. 프리랜서가 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만은 아닌데. 모든 인간이 조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름의 필요한 환경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슬펐다. 내가 프리랜서 생활을 무사히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프리랜서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을 위한 안전망 구축이 구조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게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생은 30대까지만 살고 끝나는 것이 아닌데 마치 나이 들면 삶이 얼마 안 남은 시한부 인생이 되는 것마냥 이야기하는 것도 자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젊음을 찬양하며 나이에 유독 민감하다. 이게 모두를 위해 좋은 사고방식일까? 나이 듦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이런 태도가 만연할수록 나이 든 사람은 어떤 모험도 못하고 서로를 주저앉히는 경직된 사회로 귀결될 것이다.
춤복이와 토끼풀은 내가 평소에 열심히 사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잘 살아가고 있으며 잘 버텨왔다는 걸 안다고 말이다. 그런데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걱정하는 것 같다고 위로를 해줬다. 친구 '꼼지락대는 귤'은 내 불안을 자극하는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나한테 이로운 것 같다고, 결과적으로 내가 타인의 말을 잘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심리적으로 나쁜 영향만 일으키는 걸 여러 번 봐왔다고 말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했다. 게다가 나는 채찍보다 칭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친구들은 내 감정을 이해해 주고 온전히 응원해 주는데 오히려 가깝다고 여겨지는 가족들이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친구들한테 하듯이 모든 생각을 털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말을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니까. 말을 안 하면 알 수가 없는데.
이게 맞나 의심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놓고 있는 지금 토끼풀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는 멋진 사람이니까 나를 의심하지 말고 나아가라고. 어제 꼼귤이 했던 말과 같다. 나를 믿으라고 자기 확신을 가지라고 꼼귤은 여러 번 말했다. 결국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진리로 향한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든 못하든, 그게 가족이라 해도, 나를 믿고 나아가는 길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내 일을 대신해주지도 못하고 선택을 대신해주지도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할 수 없는 일 혹은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인지 내가 알아야 한다. 나는 현재 느끼는 갑갑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나의 행복이고 안식이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하게 글을 써나갈 수 있는 환경과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쉽진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렵지만, 계속해서 시도해 왔고 또 시도할 것이다. 누구도 나 대신 해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