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는 예술인의 일

부조리의 시간으로 쌓은 계단 한 칸

by 윤슬



삭은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날 먹을 물고기를 잡으려고 한다.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찬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배 안으로 물이 들어차고 물고기는 허탕이다. 빈 손이지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격랑이 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험난하다. 이처럼 내 삶도 하루하루가 위태하고 불안하다. 여전히.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들지만 남는 수익은 거의 없었다. 예술인 증명을 받았지만 창작지원금은 첫해 이후로 받은 적이 없다. 작업의 대가가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회적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술 작업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업을 위한 준비도 일로 칠 수 있을까? 공연 연습은 일일까? 공연 제작비가 없어서 제작을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도 여전히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페이 없는 일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업성이 목적이 아니어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가도 프리랜서일까? 클라이언트 없는 프리랜서도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을까? 자조적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화를 내봤자 내 현실은 바뀌지 않고 생은 이어지며 배는 고프기에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글이나 연극과 아무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여러 가지 했다. 그러면서 여러 이별들을 겪었고 사람 만나는 일이 부쩍 줄어들기도 했다. 자존감이 깎여 나갔고 마음이 닳았다. 이 시기에 고립감과 우울감이 가장 컸다. 나에게 일이란, 아니 삶이란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높다랗고 거대한 벽을 넘어야만 주어지는 가능성 같았다. 벽을 넘지 못하는 내게 상상할 수 있는 혹은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건 없어 보였고 당장의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만 놓여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속에 원망과 미움, 후회 같은 것들이 자꾸 차올랐다. 그다음은 회의와 공허가 들어찼고 무기력해졌다. 삶의 의미, 일의 의미, 예술의 의미 그리고 존재의 의미까지도 모두 잃었다. 삶에 대한 의지와 욕망, 사라지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인생의 모순을 느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책이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삶을 서서히 느슨하게 회복해 갔다.


얼핏 보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지만 원점이 아니었다. 계단 한 칸을 쌓고 다음 계단에 올라선 것과 같기 때문이다. 슬픔과 불안과 부조리의 시간으로 쌓은 계단 한 칸. 이게 내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할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긍정인지 부정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계단 한 칸을 올라섰다는 것을 알 뿐이다. 어쩌면 계단을 한 칸씩 올라서는 것이 나의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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