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이 누군데

불안정노동자, 예술가, 프리랜서

by 윤슬

나는 디지털 플랫폼인 SNS에 글을 써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 글을 읽은 클라이언트의 외주를 받아 원고를 작성하는 일을 가끔 한다. 그리고 희곡을 써서 직접 연출하는 연극 창작자다. 동시에 등단하기 위해 소설도 쓰고 있다. 주요 수입원은 아르바이트다. 처음엔 글을 쓰는 시간과 연극 연습 및 공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풀타임보다 부담이 적은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로서 성장할 시간과 동력을 확보하는 게 우선순위였고, 이를 뒷받침할 정도로만 알바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상태가 길어지자 생활이 힘겨워졌다. 작가의 그리고 프리랜서의 삶에 만족하면서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늘 자책이 심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소설 수업을 듣고 희곡을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아르바이트 시간도 반드시 늘려야 했다.


“소득빈곤과 시간빈곤을 모두 경험하는 이중빈곤 불안정노동자가 이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이승윤 교수가 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여기서 ‘불안정노동자’란 전통적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않고 사회안전망과 정치적 목소리가 미약한 노동자들을 말한다. 이들을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가 쓰이기도 한다.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 계급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불안정노동자는 고용불안정과 불규칙한 소득, 사회보장에 제한적인 특징을 갖는다. 저자는 이를 ‘액화노동melting labour’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하청노동자, 유튜버나 웹툰작가, 크리에이터,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나 같은 사람들도 비정형적이고 비표준적인 노동자로서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청년층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일에 많이 진입하는 집단으로 구조적 변화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양극화를 겪고 있지만 세대론에 묻혀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에서 비껴 나 있는 게 현실이다.


책의 1부에서 쿠팡 노동자들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읽다 보면 절로 가슴에 울분이 찬다. 쿠팡은 전자감시 시스템을 사용하며 노동자들의 불안과 모욕감을 자극하고 이를 이용해 노동자들이 서로 무한경쟁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더 오래, 더 많이 노동하게 만들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퇴행적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쿠팡에서 새벽노동을 하다가 사망한 청년의 어머니가 “우리 애 친구들, 그 청년들이 뭐에 세뇌당한 듯 그 지옥에 자꾸 들어가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눈물이 쏟아졌다. 예술인이거나 프리랜서인 나의 지인들도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기에 진심으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본업이 따로 있고 일정 조율이 필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강의나 레슨 외에 알맞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보통 단기 아르바이트 위주로 일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게 아니다 싶어지면 결국 본업을 접고 전직한다. 나는 주변에서 4-50대 여성이 계속해서 예술이나 프리랜서 일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여성노동이 중첩되면 더 복잡한 문제가 껴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눴던 공연계 선배들은 대개 일을 쉬거나 다른 일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선배를 보면 늘 궁금했다. 어떻게 계속 일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한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한 선배는 내게 직관을 믿고 버티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그때부터 나를 믿는 마음으로 버텨왔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전에는 이런 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제는 자책할 시간에 프리랜서나 1인 (종속적) 자영업자, 예술인 같은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어서 사회안전망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찾아 듣고 연대하는 데 힘을 쓰고 싶다. 그렇게 내 목소리를 찾아, 우리 목소리를 찾아 글을 쓰고 버티고 싶어졌다.


(p.s. 불안정노동, 액화노동, 비정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지, 어떻게 위장된 고용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노동시장에서 힘의 불균형이 더 커지는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문제를 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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