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집 안에 불안이 늘 같이 살고 있다. 문이나 창문을 열면 잠시 외출하지만 곧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불안. 이 객식구를 처음 만난 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 땐가부터 옆에 붙어서 먹고 자고 있었다. 얘는 월세도 내지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이랑 간식을 축내고 새벽에 쇼핑을 한다. 가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얘는 주로 나를 집 밖으로 몰아내거나 돈을 벌러 가게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집안의 악역인 셈이라 나는 자주 얘를 미워했고 눈을 흘겼다.
그러나 얘가 없으면 생존에 필요한 생산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얘가 쓴 돈을 내가 충당하는 게 억울한 적도 있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나도 같이 즐긴 부분이 없지 않았고, 내가 귀를 막고 왁왁 소리치며 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다투다가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불안의 요구에 따라 돈을 벌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다보니 조금씩 더 준비하고 연습하면서 잘하는 게 늘기도 했다. 가령 매일 글쓰기도 연습하고 글씨 쓰기도 연습하게 만드는 식이다. 반면에 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주다가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얘를 탓하는 밤도 많았다. 얘는 보통 밤에 더 나서기 때문이다.
솔직히 도움이 되든 도움이 되지 않든 나는 얘 존재 자체가 싫었다. 그래서 줄창 싸울 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틈만 나면 쫓아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러다가 얘를 쫓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쫓아내선 안 된다는 것도.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불안과 계속 불화하고 싸우면서 살아갈 것이냐 혹은 화해하고 토닥이며 살아갈 것이냐.
나는 무엇이든 사랑하면서 살고 싶고 온화하고 싶다. 고로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억울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불안을 내 식구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는 얘가 아무리 난장을 피워도 잘 어우러지며 살아가야 한다. 아직 안아주기는 어렵다. 그래도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 ‘얘가 또 이러네, 그래, 그럴 수 있지’하며 의연해지는 것,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자 품위 있는 사람의 모습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