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작가 북토크를 다녀온 후
“취약함을 드러낼 때 사실은 절대로 취약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는 말을 하미나 작가님에게 들었다. 북토크에서 어느 글 쓰는 분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취약함은 연약함으로도 대치된다. 연약함을 드러내면 뭔가를 잃어버릴 것 같지만 드러냄으로써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걸” 발견한다는 것이다.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님도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이해했다고 하셨다.
며칠간 나의 취약함을 고백하는 글을 쓰고 말을 하면서 스스로 다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불필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더 적나라하게, 더 아프게 상처와 슬픔을 깊게 파고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더 진솔하고 더 예민해야 하는데 그만한 용기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 글을 씀으로써 나를 더 앞세우고 더 해석하고 더 배워가야 한다는 것, 나의 체험과 나의 글이 더 긴밀하게 맞닿길 바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 내가 만들었던 혹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항상 어떤 진실에 대한 의문 혹은 어떤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데, 작가인 나는 수많은 진실 중 어떤 진실을 어떻게 더 진실에 가깝게 파악할 것이며 어떤 언어로 그것들을 포획해서 풀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 속으로 깊이 침잠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정말로 침잠하고 싶어서 아주 고요하게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최근 들어 길어지기도 했다. 이 시간을 더 오래 가져가고 싶은 욕심과 생활해야 하는 현실 사이를 충돌해 가면서. 나는 부서지는 문학, 파편의 언어를 쓰고 싶은 욕망을 꽤 오래 간직해 왔는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용기를 내기도 어려웠다. 그 근저에는 ‘내가 문학에 대해 뭘 안다고?’라는 생각도 물론 깔려 있었다. 그런데 오늘 북토크에서 혼란과 균열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힌트를 얻었고 하미나 작가님에게서 용기를 조금 업어왔다. 북토크가 끝난 후, 설렜고 행복했다.
북토크를 가기 전에는 면접을 두 군데 다녀왔고 AI가 써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듬어 어느 회사에 취업 지원을 했다. 그러고서 내 작은 노트에 휘갈긴 메모. [본질에 의문. 본질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동력. 문학적 글쓰기. 희곡을 쓰고 싶다.] 북토크를 다녀온 후에 메모를 다시 보니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고 쓰고 보니 창피해진다. 그렇게 말할 만한 노력과 실력이 뒷받침되는지 모르겠어서. 동시에 문득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꿔왔던 꿈도 떠오른다. 지금은 내 재능을 비롯해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말하지 않는 문장인데, 오늘은 이런 유치한 문장으로 여리고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자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죽고 싶어.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서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