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포기하기로 했다

by 윤슬

수면제를 포기했다. 불면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지 3년 3개월가량 됐을 때 내린 결정이었다.


불면증이나 수면장애에 관련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 약물 치료로 불면증은 금방 잡을 수 있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아무리 약을 먹어도 치료가 되지 않아서 약을 끊을 수 없었다. 약을 늘리면 과수면을 하고 하루 종일 멍한 상태가 지속됐으며 약을 줄이면 잠을 거의 자지 못해서 하루 종일 졸린 상태였다. 어쩌다 약이 잘 맞는가 싶으면 일상에 이슈가 생기고 불안이 급증해서 잠을 못 자고, 그러면 약을 또 늘리고 다시 줄이고를 반복하면서 불안정한 상태를 왕복했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은 회복과 평안의 시간을 상징하는데 나는 그 시간을 도통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이상한 꿈을 꾸고 땀을 흘리면서 깨거나 아예 잠들지 못해 서서히 날이 밝는 걸 바라보다가 아침에야 조는 일상. 내 삶의 무언가 고장 났다 혹은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나를 더 큰 불안 속으로 몰고 갔다. 새벽에 찾아오는 생각들은 주로 인생 전부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 밤을 지새우면서 마주하는 이 지독한 어둠이 무섭고 싫었다. 불면의 신체적 괴로움도 컸지만 내 인생과 내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일상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괴로움은 더 컸으니까.


정신과 원장님이 해주시는 조언은 이차적 고통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불면의 괴로움이 일차적 고통이라면 불면을 생각하며 만들어지는 자책과 불안이 이차적 고통이다. 나는 왜 잠을 못 잘까,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하며 반추하는 일이 부정적 생각을 키우고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차적 고통이 커질수록 약에 더 의존하게 되었고 약을 안 먹으면 아예 잘 수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원장님과의 상의 끝에 우리는 약을 포기하기로 했다. 약을 안 먹어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잠을 늘리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잠을 못 자면서 더 예민해졌지만 그만큼 명료한 의식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이때부터 이차적 고통을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을 제법 해나가고 있었다. 잠을 못 자면 ‘못 잤네, 피곤하다, 오늘 무리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고 잠을 잤으면 ‘오늘 좀 잤네, 기분 좋다’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더 생각의 꼬리를 물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의식을 더 강화하고 다이어리와 일기를 쓰고 글을 쓰면서 일상을 되찾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며칠간 불안이 커지면서 또다시 자지 못했고 몸에 한계가 오는 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움텄고 이차적 고통도 또 시작됐다. 수면제 없이 밤을 맞이하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악순환이 되려던 찰나.


마침맞게 어제 퇴근하자마자 갑자기 저녁 8시에 잠들어버렸다! 저녁에 잠이 들다니!

어제 북토크를 다녀온 후에 쓴 글을 작가님이 공유해 주신 덕분에 평소보다 반응이 많았고 그게 마음에 안정을 살짝 줬던 것인지, 아니면 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혹은 낮에 산책을 해서였는지 어쨌든 오늘 오후 3시까지 푹 자버렸다. 이렇게 길게 몰아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잔다는 게 이런 감각이었지. 몸살 기운이 사라지질 않더니 이제야 몸이 좀 편안해진 것 같다. 수면제를 포기한 뒤로 밤이 오는 게 더 무서웠다. 그런데 무서울 틈도 없이 가장 많이, 가장 잘 잔 날을 겪어보니 이런 게 평범한 행복이구나 느껴진다. 잠만 잔 오늘은 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글을 쉬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렇게도 글이 써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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