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인 연출가로 데뷔한 건 2019년 가을이었다. 꿈에 그리던 일을 하게 된 기쁨과 내 이상에 미치지 못한 실망과 슬픔 모두를 뒤로 하고 2020년,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던 도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회의가 밀리고 밀렸다. 조금만 더 미루면 되겠지 생각했던 작품이 그대로 증발하는 망연함을 겪었다. 스태프를 전전하며 단기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아무 보상도 없이 일을 잃고부터는 공연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 모습이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 같아서 나를 지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뒤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에서 희곡을 써서 공모전과 지원사업에 투고했고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겸하게 되었다. 콘텐츠 기획 회의에 참여하고 작가로서 연출로서 촬영감독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영상 제작에 임했다. 당시엔 우리가 만든 멋진 콘텐츠가 금방 빛을 볼 줄 알았는데 좀처럼 수면 위로 튀어 오르지 않았다. 번민이 잦던 어느 날 촬영장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내 빛과 소음이 격렬하게 뇌를 쥐고 흔드는 것 같았다. 다음 정차역에 내려서 바로 눕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고작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늘어졌다.
이후로 정신과에서 항불안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고 원장님의 권유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정한 전문상담센터에서 예술인 상담치료를 받았다. 한동안은 지하철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 탈 수 없었다. 심장이 뛰는 감각을 의식하는 게 기묘하고 공포스러웠다.
이 시기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써내려갔다. 정신과 원장님이 내 감정과 생각을 무작정 써내려가라고 제안하셨기 때문이다. 진료 상담 일지를 남길 때도 있었고 날것의 감정을 배출할 때도 있었다. 신체적 증상이나 세세한 감정 변화를 기록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불안하게 만드는 것 등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나와 나의 불안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
생계의 문제나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불안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는 걸 아주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을 거쳐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여기에서 밝힐 순 없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는 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나는 관찰과 돌봄을 반복 수행해야 하는 상태였고 그 긴 터널을 통과하는 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기록 생활에 기대야 했었다. 일기가 생명줄이 된 것이다.
지금은 당시의 병원과 다른 병원을 다니고 담당의도 다른 분이시다. 그런데 지금의 원장님도 내게 어떤 충동이 발생할 때마다 “종이를 펴고 모두 써보세요.”라고 권하신다. 내가 매일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전문상담센터에서 1급 임상심리전문가에게 받는 상담은 비싸거니와 이를 대신하는 일종의 대체 상담 같은 것이 역효과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제 매일 쓰는 일기와 자기 탐구 기록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자 고통을 해소해 주는 공간이 됐다. 또한 삶을 지탱해 주고 다음 작품을 향해 나를 밀어주는 하나의 생존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거기에 낭만을 입혀서 굳이 예쁜 다이어리를 사고 귀여운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