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과 브런치 같이 넓디넓은 플랫폼의 수많은 글들 사이에서 내 글과 마주쳤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주침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내가 쓰는 글에는 실용적인 정보도 없고 힐링되는 아포리즘도 없으며 성장이나 극복 서사도 없다. 어느 영역의 전문가도 되지 못해서 뚜렷한 지식이나 경력에 기반한 통찰 같은 것도 없다. 내 글은 그저 보고 듣고 읽으며 인식한 것, 감각한 것, 생각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자 하루를 더 살아남은 우울하고 불안한 청년의 흔적이다. 아마 글 중에서도 가장 무용한 글일 것이다. 그래서 내 글을 시간 들여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송구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오늘은 글을 쓸 용기가 좀체 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누구도 원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라도 만족할 만한 글이면 위안이라도 얻을 텐데 지금까지 쓴 글이 지금의 나를 정확히 말해주는지, 어디까지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번민만 늘어났다. 이런 날에 꾸는 꿈은 다음과 같다.
막이 오른다. 무대 뒤에서 대사가 기억나지 않아 허겁지겁 대본을 넘긴다. 급하게 대사를 외운다. 등장해야 하는 타이밍. 배우들이 나를 떠민다. 등장. 조명이 나를 비춘다. 객석이 가득 찬 대극장. 배우는 나 혼자다. 관객들의 기대에 찬 눈빛. 클라이맥스의 숨죽인 긴장. 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전혀. 단 한 마디도. 입이 얼어붙는다. 그대로 죽고 싶다.
이미 여러 번 꿨던 악몽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과 당혹감, 그리고 무력감. 백지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글을 다 쓰고 공유한 뒤에도 느끼는 감정. 내가 쓴 글이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고민하다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생각을 접었다가. 지금까지 쓴 글을 모두 모으면 어떤 모양으로 접힐까. 희망을 품었다가 어차피 사라질 글들이라며 고개를 흔드는 식.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보다 글 쓰는 시간을 늘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아르바이트 시간에 머릿속에서 지은 문장 몇 개를 붙잡아 겨우 글 한 편을 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