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좋은 기회를 걷어차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내가 그랬다. 시상식에 참여하면서도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의심했고, 직후 슬럼프에 빠졌다. 공공기관 담당자분들이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내가 작가인가 라는 의문에 빠졌고, 라디오 인터뷰 제의가 왔을 때도 두 번이나 거절했다. 보도자료가 나온 신문 기사를 공유한 적도 없었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거절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늘 배에 탈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멀어지는 배를 보며 항구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도통 왜 이러는 건지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심리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원인을 깨달았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나의 심판자이자 처벌자라고 하셨다. 아주 오랜 상처에서 기인한 무의식에서 나는 좋은 걸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너무 오랫동안 과하게 스스로를 처벌해 왔어요. 사실 처벌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는데요. 이제는 그만 어린 나를 용서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러나 의식한 뒤에도 나를 용서하기란 어려웠다. 오히려 내가 나를 처벌하며 망친 일들까지 더해지며 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세션에서 상담 선생님은 “모르는 어린이가 지금 이 방에 들어왔다고 상상해 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와 똑같은 일을 당했고 똑같은 상처를 받았다고 설명해 주셨다. “이 어린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는 눈물을 쏟으며 “네 탓이 아니야. 흘러가듯 잊고 자랐으면 좋겠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가 나한테 해줘야 할 말이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내 마음속에 작은 폭포가 생겨났다. 폭포를 둘러싼 못에는 모래톱과 바위가 있다. 내 안의 어린이는 모래톱이나 바위 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곳에 가면 우리는 안전한 나룻배를 함께 타고 폭포를 거슬러 오르며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눈다. 불안하거나 슬플 때마다 나는 그곳을 찾아 어린이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마음이냐고. 괜찮냐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인다. 가혹한 형벌을 주는 대신 어린이의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습관이 되어버린 회피와 두려움을 깨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원하는 걸 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 마음. 스스로에 대한 자신 없음. 자기 비하. 이것은 『물러서지 않을 용기』에서 말하는 ‘핵심 자아를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와 닮아 있다. 지금은 이것을 깨닫고 내 안의 어린이를 돌보며 나를 마주하려 글도 쓰고 기록도 남기며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자격을 묻는 대신 나의 욕구와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위한 행동력과 자신감을 찾는 일이 평생의 과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