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연대기

by 윤슬

우울증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를 어떤 식으로든 판단하게 만드는 잣대 하나를 쥐어주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드리웠던 우울을 지워버린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기도 했다. 우울과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글을 쓰려면 우울이 나의 어느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곳은 오래된 원목 책장이 벽면 한쪽을 채운, 퀘퀘한 냄새가 나던 어두컴컴한 진료실로 기억된다. 책상 너머에 나이 든 남자 의사가 기우뚱 앉아 있었다. 스트레스 검사 결과지를 들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뭐 그런 건 아니고요. 일시적인 거니까 별 일 아닙니다.” 부모님은 안도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니었다. 내가 겪는 일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한다고 느꼈다. 나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학교를 가지 않으면서 어찌저찌 일단락되는 모양새였다. 겉으로는...

학업에 복귀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했다. 성적에 맞춰 공대로 진학했으나 전공이 나와 맞지 않았다. 매일이 위축되는 나날이었고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술대학에 복수 전공을 신청하고 합격해서 다니면서 성적이 회복되었고 미학 수업에서 공부하는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미학으로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말했다. “니가? 공부도 못하는 니가 무슨.” 주전공이 아닌 복수전공 학과에서는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결국 양쪽 학과 생활 모두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정신과를 찾았을 때 중증도 우울증과 사회공포증 진단을 받았다. 졸업이 미뤄졌다.


이후로도 자의적인 단약과 다시 정신과를 방문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불면증이 심각해졌고 판단이 흐려지는 충동을 겪으면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한 게 3년 반 전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흘러와야 했던 것인지 어리둥절했고 나는 왜 이리 나약한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치료를 하면서 내 안에 지울 수 없는 여러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중 한 가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며,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거라는, 열여섯 살 때 들은 말이었다. 청소년기에 들은 말 한마디일 뿐인데.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과거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공감했다. 내가 가장 바라는 점도 그것이었으니까. 과거를 과거로 보내주는 것. 그 낙인을 내 피부에서, 오장육부에서 긁어내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의 이야기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극복했습니다. 같은 회복 서사가 아니다. 이 글은 언제 정신과를 방문했다는 연대기이며 어떤 글은 이러한 증상을 겪었고 일상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고 어떤 글은 그런 일상 속에서 남긴 질문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때론 나도 감동이 있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간절히 쓰고 싶지만 지금도 매일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2주마다 정기 진료를 받고 있어서 그럴 입장이 못 되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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