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동료가 물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글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며칠간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떤 날은 2천 자도 쓰기 어렵고 어떤 날은 1만 자를 쓰기도 했으니 글의 총량이 정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쓸 수 있는 총 작업 시간은 보통 4-5시간가량으로 한정되어 있다. 소설과 희곡을 쓰면서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감 직전은 예외.) 작업 시간에는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 구상 시간도 포함된다. 그러니 실제로 타자를 치는 시간이 더 짧은 날도 많다. 그 외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다큐를 보며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탐색하고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해야 한다. 소설이나 희곡을 작업할 때는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나는 그렇게 에너지로 충만한 나날들, 몰입의 시간들을 좋아한다.
소설이나 희곡을 쓸 때 즐거운 것에 비해 산문 쓰기는 어려움을 수반한다. 요즘 배로 지치는 기분이 들어서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다. 첫째, 강렬하게 몰입하는 쓰기를 경험하기 어렵다. 둘째,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흥미가 없다. 셋째, 나는 허구를 직조하고 거기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즉, 쓰는 재미가 없다. 가슴 떨리는 흥분도 없다. 소설도 잘 쓰고 산문도 잘 쓰는 소설가도 많지만 나의 능력 부족인지 내가 아직 산문의 매력을 찾지 못해서인지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걸 쓰고 있다는 감각이다. 말 그대로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같다.
글 작업 분량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든 글 작업 시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든 나의 한정된 자원 안에서 어떤 글을 우선해서 쓸지 결정해야 한다는 걸 산문을 쓰면서 깨달았다. 막연히 오전엔 소설 쓰고 밤엔 산문 쓰면 되겠지 라는 생각 정도론 충분하지 않다. 현재 나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매일 꾸준히 작업하고 싶은 건 지금으로선 소설과 희곡 쪽이다. 이제부터는 새로 구상하기 시작한 소설 작업을 최우선으로 두고 남는 시간과 남는 체력으로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만 산문을 써야겠다. 지금처럼 산문이 내게 부담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쓰고 싶지 않은 걸 쓰는 것이 프로인지 몰라도 나는 프로를 지향한 적이 없으며 지금 내가 구성하고 싶은 세계의 윤리와 가치, 우선순위를 뒤집고 싶지 않다는 것이 씀으로써 분명해진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