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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Oct 02. 2023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여기 젊은 가장이 있다. 몸 쓰는 일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서민, 특별할 것 없는 미국 시골 동네 남자다. 

술에 취한 젊은 가장은 벽난로 안전판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그렇게 화마는 아이 셋을 삼켰다. 주취자의 실수치곤 가혹한 형벌이다. 공권력은 그를 실화범이라 용서해 줬지만 지옥에 갇힌 아내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다. 스스로 죽지 못 한 남자는 더 깊은 지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그럼에도 불구한 삶'에 관한 얘기다.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사는 리 챈들러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형의 장례를 위해 5년 만에 귀향했다. 지옥 같은 추억으로 뒤엉킨 고향은 챈들러를 여전히 괴롭힌다. 죽은 아이들이 불쑥 꿈에 나타난다. 죽은 아이들의 엄마가, 나 새 결혼해서 임신했다며 전화를 건다. 어린 조카는 아버지를 여의고도 철이 없다. 


크고 작은 실수로 직조된 우리 인생은 때때로 일상을 집어삼킨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효능감 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영화 속 챈들러를 괴롭히는 뒤죽박죽 플래시백처럼, 우리 삶에도 흑역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구남친 때문에 과거가 송두리째 쪽팔려지면서 나아가, 살기 싫어지기까지 하는 게, 그게 인생이다. 


그 어두운 역사를 잊기 위해 챈들러는 술집의 애먼 옆자리 손님을 패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자던 형수는 과거는 씻은 듯 예수에게 자신의 삶을 맡겼다. 철없는 조카는 죽은 사촌들의 사진을 보고서야 삼촌을 위로한다. 우리는 고통의 무게추를 옮겨가며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1인칭 주인공으로선 서운한 일이지만 이건 저마다의 생존 방법이다. 


삶은 지옥일까, 천국일까. 선택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뿐이다. 친형을 잃어도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리 챈들러처럼. 냉동고 속 얼린 닭고기를 보며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는 패트릭 챈들러처럼. 웃거나 울거나. 


다만, 망망대해를 향해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낡은 배의 모터를 새것으로 갈면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알려준 최소한의 인생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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