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 <안도 타다오>
2017년 여름, 인터넷 서칭 하다가 특가항공을 발견했다. 당시, 한적한, 일본 소도시 여행을 즐겼다. 그중에 제일가고 싶었던 지역이 시코쿠였다. 시코쿠로 가는, 직항 편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고, 엄마와 함께 일주일간 시코쿠 여행을 떠났다.
시코쿠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
하루키처럼 우동 먹기,
나쓰메 소세키 소설 [도련님]을 읽고, 소설의 배경인, 마쓰야마에서 온천하기,
나오시마 섬에서 미술전시 관람하기.
엄마는 일주일 만에 3개의 현을 돌아다니며, 미친 일정을 함께 소화해줬다. 시간이 흘러도 시코쿠 여행은 한 번씩 회자될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 에히메에서 고치현으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불빛 한 점 없는 차창 바깥, 교환학생 때 잠깐 만났던 일본 친구를 조우한 일, 야시장에서 불륜커플과 합석해서 대화 나눴던 일, 마키노 식물원, 우치코 마을에서 인생 소바...) 그중에, 나오시마섬은 정말 잊지 못할 헤프닝을 남겼다.
당시에 우동의 고장인, 카가와 현에서 1일 3우동 먹으며, 엄마는 나의 안내에 따라 선착장을 향했다. 나오시마까지는 잘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좋은 관광 가이드는 아니었다. 월요일은 도내 미술관이 휴관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예술에 대한 지식은 1도 없었고 심미안이라고는 없었지만,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몹시 눈에 담고 싶었다.누군가 SNS에 올린, 건축물에 스며든 빛의 각도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휴관일로 인해 미술관을 외관으로 눈에 담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미술관 앞에서 고증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나서, 자전거를 대여했다. 자전거로 폭풍 질주하면서 나오시마 섬 한 바퀴를 돌고 동네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한다. 휴관일이라서 그런지 섬 내에 사람이 없었고, 섬 외곽으로 일몰이 지는 모습도 너무 아름답게 잔상에 남았다. 엄마랑 함께 소녀처럼 깔깔 거리며 자전거를 타며 섬을 질주했다. 이때,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속력 내고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엄마가 급정거하니까, 속력을 못 줄여서, 제대로 넘어졌고, 마침 맨살이었던 무릎이 제대로 찢어져서 피가 철철철 났다. 너무 아프고 사람도 마침 없어서 길바닥에서 애새끼처럼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있던, (여행 당시, 면세점에서 샀던) 가죽 가방에도 스크레치가 제대로 나서, 통곡을 멈출 수 없었다. 무릎도 망가지고, 새 가방도 망가져서 슬펐는데, 관절은 멀쩡했다.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소지품을 주섬주섬 주워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해가 질 때쯤, 우리는 섬을 나오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게 우리의 나오시마 방문기이다. 섬에서 나갈 때,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앞에서 고증 사진 하나 더 남겼다. 아직도 이 현대 건축물의 의미를 모른다.
휴관일로 인해, 아름다운 작품과 건축물은 눈에 담지 못했는데, 본질적인 아름다움인, 섬의 자연과 일몰을 눈에 담았다. 또, 인파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더불어서, 스크레치가 크게 나버린 헌 가방이, 그 아름다운 가을날을 상기시킨다.
[건축과 자연, 사람을 연결하는 거장]
건축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싶다.
현업으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지는 못 했다. 처음으로 건축에 관심을 가진 건, 유년시절 살던, 단층집을 이층 집으로 개조했을 때였다. 동네 목수가 점심도 거르면서 몰입하여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불현듯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항상 희망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
よし! 건축일을 해야겠다! 고 생각하며 건축가를 꿈꿨다. 고민 끝에 완성된 것을 받아들이는, 목수의 모습이 감명 깊었다. 하지만, 건축을 배우기에는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고등학교 2학년. 번화가에 있던 복싱 체육관을 갔다가, 4라운드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는 생각으로 4개월 만에 프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싸워서 돈을 벌 수 있다고?" 굉장하다고 느꼈다. [진지하지만 엉뚱한 안도상] 한 경기에서 당시 월급의 3분의 1을 준다고 해서 10경기 이상을 나갔고, 방콕에서 열린 경기 때문에 스물넷에 첫 세계 여행을 하게 되었다.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이 끝난 시점, 다른 세계를 겪어보고 싶었다. 10개월 간 세계여행을 했다, 요코하마 > 시베리아 열차 타고 모스크바, 핀란드, 유럽 일주하고 마르세유 갔다. 마르세유에서 생각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내친김에 아프리카도 가 보자. 그래서 파리-다카르 랠리의 다카르에서 상아해안을 건너, 아프리카를 돌아 케이프타운까지 갔다. 케이프 타운까지 왔으니, 어디 한번 마다가스카르 섬에 가보자. 그곳에서 8일에 걸쳐서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넜다. 그리고, 뭄바이, 옛날 몸베이에 가서 인도를 돌고 아시아를 돌며 10개월간 여행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여행 동안 하루하루 목숨을 걸었다, 목숨은 위협받았지만, 느낀 게 있었다.
지구는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건축이라는 일을 통해서, 공동체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물론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8시간 동안 독학했다. 4년 공안 정규 교육을 1년 동안 독학으로 끝내려고 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하면서 배웠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세계는 학력사회이기에 건축가로 받아주지 않았고, 29살에 설계사무소를 설립한다. 그렇지만, 역시 설계 사무소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니, 내가 먼저 좋은 것을 만들면 상대방이 찾아올 것이다. (참으로 낙관적) 물론 일은 없었지만,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일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공부했다.
건축가로서 나라와 교토를 견학하며 역사적인 건축물을 눈에 담았다. 슈카쿠인 리큐, 가쓰라 리큐 등을 보면서 '건축의 근본은 무엇인가'고민했다. 인간은 건축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건축에서 내편은 자연이다. 자연을 내편으로 만들고, 다음엔 가족과 사람들의 삶을 내편으로 만든 뒤, 미래를 보자. 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지은 집, 도미시마 주택(1973),
오사카 소재,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본래에는 베프의 동생이 의뢰한, 작은 집이었다. 부부 내외와 자녀 1명으로, 3인 가구가 거주할 주택이었다. 집이 완성되고 아이가 한 명 더 생겼다. 네 명이서 살기 집이 작지 않을까? 의뢰인이 고민하던 차에, 쌍둥이가 또 생겨서 6인 가구가 되었다. 지금은 제가 그 집을 매매하여 개축하고, 거주하는 중이다. 직접 지은 집에 사니까 불편한데, 위에서 빛이 들어와서 좋다. 함께 왁자지껄 떠들고, 훤히 트여있는 실내가 좋다. 합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사용하기 쉽지도 않지만, 본래 집은 영혼이 사는 곳이자 육체가 사는 곳이다.
1985 버블경제 절정에 지은, 작은 교회,
훗날 [빛의 교회. 1989]
당시에는 경제가 호황기여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소일거리였으나, 한다고 받아들였다. 보통 교회는 목사가 위에서 아래를 보는 구조이나, 눈높이를 맞추게 설계했다. 목사 뒤에 십자가로 빛이 들어오게 설계했는데, 이는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았다. 로마 판테온은 유리 없이 위에서 들어오는 빛이 들어오게끔 설계되었는데, 그 빛이 생명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빛의 교회에서에서 들어오는 빛이 로마의 판테온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동안, 빛의 교회 십자가 부분의 유리를 빼고 싶지만, 교회 관계자들이 반대한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추울 수도 있으며 더울 수도 있다. 자연과 체감하는, 건축물을 꿈꾼다.
홋카이도 소재 , [물의 교회, 1988]
물에 떠있는 것처럼 설계했다. 눈이 올 때는 새하얀 눈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는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세월이 지나가도, 미래에 희망을 품었던 자신을 떠올리기 바랐다.
효고현 소재, 물의 절, 연꽃이 둥둥 떠 있는 진입로로 들어가면 지하에 절이 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도 그의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본태 박물관, 강원도 원주에 museum san을 건축했다.
가장 최근 지은 건물, [부르스 드 코메르스 2022]
파리 에펠탈 앞에 있다. 에펠탑은 1889년에 지어졌는데, 당시에 이런 건축물 필요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파리의 상징이다. 에펠탑처럼 부르스 드 코메르스도 그런 건축물이 될 것이다. 18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 속에 전시장을 설계했다. 유리천장 아래 원형 공간은 높이가 약 70미터 정도인데. 그 안에 홀을 넣었다. 원형 공간으로 빙 둘러 걸으며 보는 전시장은 세상에 이곳뿐일 것. 그러다가 전시장 위를 올려다보면, 거의 200년 된 건축물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 세상, 생각, 발상을 다음 세대에 전함으로써 영혼이 지속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이곳에 들어가 있으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 옆에 루브르 박물관, 건너편에 퐁피두 센터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나오시마 미술관 섬, 1987년에 의뢰받다]
현대미술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짓고 싶다. 고 의뢰받았다. 나오시마는 세토내해 안에 위치한 섬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
당시에 인근 세토내해 섬들은 민둥 섬이었고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 곳이었다. 데시마라는 산업 폐기물 섬에서 아름다운 섬을 만들어 보자. 고 의뢰했고, 환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데시마 일도 해야 했고, 그 옆에 있는 나오시마라는 섬을 미술관 섬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뢰를 연달아 받았다.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지만 섬사람과 함께 묘목을 심고 현대미술품을 전시했다. 작업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환경 복구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지구온난화 그다지 와닿지 않았는데,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는 어떨까? 지구는 무한하지 않다. 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야 한다. 60년대에는 20억 인구가 오늘날에는 80억이고, 100억 인구 달성되면, 식량, 에너지 고갈, 환경위기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중에 산업폐기물은 단연 유해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때 주민들이 기부한 묘목 심어서, 섬은 숲을 이루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나오시마 소재, [베내세 하우스 뮤지엄 1992] [안도 뮤지엄 2013]
당시에는 어떻게 이런 섬이 과연 현대 미술의 섬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후쿠타케 사장이 나오시마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샀다. 이 호박 뭐가 될까? [세상 진지]. 이 호박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생각할까? 섬에는 이우환 미술관을 비롯해서. 월터 드 마리아, 리처드 롱 작품, 쿠사마 야요이 작품을 보유 중이다. 섬을 계획한, 후쿠타케 사장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위해 평생 공부했다. 빛을 추구하며 살다 보면 그 빛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3천 명 사는 섬에 70만 명이 찾아들어, 자연과 삶을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풍요로움은 무엇일까? 결국에는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 자유와 용기를 갖고 고난을 극복한 한 남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을 알기 시작했고, 그 마음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오시마 소재, [지추미술관 2004]
모두 지하에 있다. 왜 지하에 있냐면, 나오시마 환경을 지키는 미술관으로 지하에는 자연광만 들어온다. 일반 미술관은 조명을 비추지만, 이곳은 해가 지나감에 따라 조명이 달라진다. 미술관내에 클로드 모네 스페이스> [모네의 수련] 소장, 상시전시 중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여유롭고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은 유한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남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인의 커리어중에,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의미가 있다.
오래된 건물 안에 새로운 생명을 담고 싶었다. 건물 안에 알을 넣고 싶었다. 그 알에서 빛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물이 알을 품게 설계했다. >> 데미안인가? huh…
물론 채택되지 않았다. 학력, 이력, 가정형편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이었다. 그럴 땐 나를 상대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던 중에 피노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베네치아 소재, [푼타 델라 도가나2009] 오래된 건물 + 새로운 건물, 15세기 건축물을 활용해 만든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오래된 건물이 가치를 잃지 않게끔. 재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발상을 떠올라서 실행 중이다.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스스로 건축자금을 대고, 운영자금 모집하여 허가를 받았다.
일본 도노 소재, [어린이 책의 숲 2020]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노인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님과 주변을 소중히 여기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 공간에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들고 밖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저명한 노벨수상자들이 책을 기부했다. 넓은 관계 속에서 꿈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새삼 깨달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간다.
책을 읽으면 어디든 갈 수 았다. 아쉽게도 내가 자라난 환경에는 책이 없었다. 앤드류 카네기의 말에 따르면, 틈틈이 읽었던 책이 인생에서 힘이 되었다. 고 한다. 그의 말을 지지하며 도서관을 짓고 싶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신음한 이와테현을 비롯해서, 고베, 오사카, 도쿄 우에노, 후쿠시마에도 지었다. 교토에도 짓고 싶다. 한국 일본 중국이 모두 자국 주의를 내세우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인의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공간에 대한 나의 사색_______
안도 타다오 건축물도 멋있지만 멀리 안 가도 우리는 멋진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한옥이다. 내가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연, 차경 때문이다. 조상님들은 창을 아름다운 액자로 삼았다. 따라서, 자연이 곧 그림이다.
창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는 한평생 사람의 감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만약 이것을 보다 본격적이고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집은 사람에게 매우 이로울 수 있다. 한옥이 그렇다. 한옥에서는 창을 창으로 보지 않았다.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액자로 봤다. 한옥에 유난히 창과 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한데, 선조들은 집에 앉아서 창과 문을 여닫을 때마다 수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풍경을 만들어 보는 놀이를 즐겼다. 그 경치는 물감으로 그린 가짜 평면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3차원 실체이니 풍경화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사실적이었다. 차경이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긴다. 소유해서 벽에 거는 그림과 달리 풍경 요소를 그대로 존재하게 한 뒤 그것을 빌려서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렸다. ‘소유 대 존재’의 화두에서 존재를 선택한 것이다. _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에 위치한 동네에서 태어나서, 줄곧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는 중이다. 상전벽해와 같이 바뀐 동네의 변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중에, 내가 태어난 산부인과 건물은 그대로이다. 꽤 낙후된 건물 외관이 그대로인데, 속은 카페로 탈바꿈했다. 간혹 그곳에 들려서 엄마랑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내가 모르는 가족의 역사에 대해 묻는다. 그럼 엄마가 재밌게 스토리텔링을 해준다. 확실히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건물 골조만 남으면 슬프겠지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된다면,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익숙해진 동네이지만, 사실, 나는 이 동네에서 평생 살고 싶진 않다. 무조건 자연이 어우러진 주택에서 거주하고 싶다. 규격화되어있는 아파트가 너무 싫다. 늘 막연하게 귀농해야지, 생각하다가 얼마 전 아침밥 먹다가 불현듯 내가 살고 싶은 집이 그려졌다.
내가 노후에 살고 싶은 집은 차경을 끌어다 주는 넓은 창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정돈 못하니까 가구나 짐은 적었으면 좋겠다. 집은 에너지 효율상 적은 평수로, 정원은 규모가 컸으면 좋겠다. 거기서 내가 먹을 채소 가꾸고, 정원도 가꾸고, 5월에는 장미가 폈으면 좋겠다. 오솔길도 좁다랗게 만들고. 지구가 마지막 날이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심어야 하니까, 나무도 비싼 종으로 심고 싶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해 주는, 사교성이 좋은 종의 견을 반려동물로 삼아야겠다. 달걀을 좋아하니까. 닭도 키워야겠다. 미국산 달걀은 먹으면서도 찝찝하다. 겨울에 노천욕도 좋은데.하노끼 욕조도 하나 만들까? 그리고 별채를 만들어서, 도시생활에 지친 친구들 불러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맛있는 거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안식을 제공하고 싶다. 그 친구들도 글을 썼으면 좋겠다.
무언가 좀 깨달았을 때, 나라는 책을 발간하고, "잘 놀다가우, 이 생(生)에 미련은 없소" 하면서 영면에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