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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May 29. 2022

5  O’ Clock Shadow



 나인 투 식스가 상식인 건 안다. 그런데, 내가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2시간만 일찍 집에 가면 참 살만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학교 다닐 때부터 정신분열끼가 있었다.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게 곤욕이었다. 누군가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거라던데, 그래서 내가 성적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너 좀 산만해

직장상사도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은 좀이 쑤셔서 사무직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느닷없는 코비드로, 어느새 파티션 안에서 잠자코 앉아서 일하는 중이다. 점심시간은 정오이다. 말하기 싫어서 주로 혼밥 한다. 그리고, 간혹 영혼이 빈곤하면, 점심시간을 쪼개서 엘리베이터 타고 수직하강한다. 지하 일층에 신전이 있다. 바로, 교보문고.




이어령마지막 수업


교보문고에 가면,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매대에 깔려있다. 무심코 집었다가 코끝이 찡했다. 선생님의

글이 진정성이 느껴져서 애도하면서 울다가 (R.I.P) 백수였을 때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오열했다.





2019년, 사이공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어 클래스에 A라는 영국 동생과  M이라는 미국형이 있었다. 아침에 그 친구들과 베트남어 강의를 듣거나 베트남 신문기사로 스터디를 하곤 했다. 셋이 같잖은 베트남어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눴다. (대화 내용이 웃겼는데, 차근차근 풀어보고 싶다.) 스터디 끝난 후, 그 친구들은 일하러 가고, 나는 어학당을 다녔다. 그리고 저녁에 또 만나서 길바닥에 있는 목욕탕 의자 같은 데에 앉아서 Gà rán이라는 베트남식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눈다. 이때, 얘네들이 아침이랑 다르게 얼굴에 웃음끼가 없고 말이 없다. 아침과 다르게 수염도 수북하게 올라와서 초췌하다.


“너 그새 수염 올라왔어,
우와, 정말 찌들어 보인다, 야 ^^”



A가 대답한다.

“윤, 나는 일하다가 왔어,
놀고 있는 네가 뭘 알겠니?^^  
 너 Five o’ clock shadow라는 말 알아?”



“ 고독에 남녀가 있나요? “
“차이는 있어,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섀도  five o’ 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은 오후 다섯 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내다. 문득 정신 차리면 오후 다섯 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에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책 읽다가 19년도 그 시절이 그리워져서 친구에게 연락했다. 스위스 여행 간다더니 연락 두절되었다. 너네랑 내 팔자가 뒤바뀌었다.고 본다.


끝까지 가봐야 총체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했던가, 죽음을 앞둔 선생님의 말에서 영적인 힘을 느꼈다. 책에 불변한 진리가 있다. 생에 치여서 망각하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는다. 역설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면 더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진정 추구하는 게 무엇일까 자족을 찾게 되고,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을 진정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출근 길에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죽음을 기억하고 곱씹어본다. 놀랍게도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적을 맛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


선생님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고, 나는 그의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되었다. [...] 왜 케바케에 진실이 있는지, 왜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닌 한 커트인지, 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파뿌리 한 개에 우수수 매달려 함께 천국에 가는지, 자족은 무엇인지, 눈물은 언제 방울지고 상처는 어떻게 활이 되는지,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순간...... 우리는 제각기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_ 저자 김지수가 쓴 프롤로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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