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오래 남는다

친애하는 무형자산

by 윤짱



나에게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어떤 친구가 진짜 친구냐고 묻는다면, 내 생각에는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찝찝한 느낌이 안 드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가끔 만나서 관계가 돈독한 걸 수도 있겠다.) P여고를 함께 다녔다. 사실, 우리 셋은 학교 다닐 당시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친구들은 이과이고, 나는 문과였다. 십 대의 친구들은 치열하게 공부했고, 나는 느슨하게 뒤쳐져서 걷고 있었다. 내 행동이 굼뜨다고 나를 버리고 뛰어가던 친구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그러면서도 본인도 그렇게 못 살겠는지, 고3 때에 부모님 몰래 GMF (인디음악 페스티벌)에 가자며 나를 꼬드겼다. 친구네 어머님이 자꾸 전화 와서, 우리는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때 우리는 스탠딩 앞쪽에 있었는데,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라는 곡이 시작될 때,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왔다. 그래서 그 곡을 들으면, 그 해의 여름날이 상기된다.


그렇게 나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던 친구가, 재수가 끝나고 나서야 연락 왔다. 우리는 여름마다 락페를 갔고, 콘서트도 열심히 가서 뛰어놀았다. 여름이 아니더라도, 슬픈 일이 있으면 한강에서 만나서, 돗자리 깔고 누워서 음악을 듣곤 했다. 20대의 여러 해가 그 친구와 함께 한 음악으로 기억된다.


2022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그렇게 10년을 흘려보냈다.

설연휴를 맞아서, 본가를 내려가지 않는 친구들끼리 모인다. 서른 넘어서도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면 십대와 다를게 없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그럴 때는 집을 나와야 한다.


이게 명절음식이지~
약과쿠키

명절음식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곁들여서 음미한다.


트러플 짜파게티에 갓김치

자리 옮겨서 목살에 와사비 올려서 쌀밥에 얹어 먹는다. 근본이 있는 식당은 신경 써서 좋은 쌀을 쓴다. 어느덧 식당 가면, 쌀 생산지을 유심히 읽어보는 나를 발견한다.


, 올해 들어서 술은 끊기로 큰 결심을 했다. 한 명은 당뇨끼 있다고 하고, 한 명은 고지혈증 의심된다고 했다. 나도 위염이 심하다.


양심상 가끔 저탄고지 with decaf


한참 먹다가, 소나무가 향기에게 묻는다.

너 이름 바뀐 줄 몰랐어
모르는 이름으로 카톡 와서
너인 줄 몰랐어

향기가 대답한다.

“[향기]라는 이름, 사람들이 단번에 못 알아듣고 재차 묻더라고, 통성명하기 짜증 나서 바꿨어. 그리고 새 이름이 입신양명할 조짐이야.”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뻔한 푸딩


,

그러다가 느닷없이 MBTI 이야기 나왔는데, 둘은 MBTI가 얼추 비슷했다. 기업형 인재 같은 IST-로 통하는 그들, (그런데 막상 단둘이 만나지는 않고 내가 가교역할을 하고는 한다.)


그러다가 향기가 말했다.

나는 ENFP 같은 스타일이
안 맞아.


고기 먹는 데에 열중하던 내가 조용히 대답한다.

그게 바로 나야.
내가 ENFP야.





(향기랑 헤어지고, 소나무랑 집으로 가는 길)


소나무 : 너가 향기랑 친했나?

나 : 아니, 오히려 고등학교 때 놀던 애들이랑은 연락 안 해. 향기가 오래 남네~


소나무 : 엇? 야, 그 문장 뭔가 좋은데?

나 : 뭐???


향기가 오래 남는다.

비 오는 날에 꽃집 지나갈 때 냄새가 너무 좋아서 꽃 한 다발을 샀다. 꽃을 들고 가는 동안 품에 베는 냄새가 너무 좋았다. 꽃은 비싼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꽃을 선물하는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그다음부터 나는 비 오는 날에는 종종 꽃향기를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는 한다. ( 같이 기분 좋은 냄새 맡고 뒤처리를 부탁하는 셈이다.)


어쩌면 꽃이 좋아진 이유가 향기인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의미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넌지시 말했다. 입신양명할 새 이름은 회사에서만 불리면 되겠다고, 그리고 사람이 오래도록 머무는 이유는 향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의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Diener,Sapyta & Suh, 1997).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행복을 정육점에서 판다면, 현재 시중의 고기들은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다. 오컴의 칼날이 필요하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인가?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할수록 행복의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제척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로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_행복의 기원_서은국


사막에서는 조금 외로워.
그런데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해져.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해가 지는 쪽으로 가야 해.
가끔 폭풍, 안개, 눈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리고 이렇게 말해봐.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마음으로 봐야 더 잘 보인다는 거야.

_어린 왕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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