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상수의 마음'이 아니라 '경애의 마음'인 것이 의아할 정도로 처음엔 상수라는 인물만 읽혔다. 다시 읽어보니 상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경애의 마음'이란 사실이 보였다. 그래서 독자 역시 상수가 되어 경애를 바라보게 만든다. 상수에겐 뒷 배경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설픈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회사 대표와 재수 동기라는 것이 다른 직원들을 신경쓰이게는 했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상수는 반도 미싱에서 팀원이 없는 팀장대리의 직함을 달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뭔가 모자란, 미싱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특출난 것이 없는 사원이란 이야기다.
상수와 유사한 색깔을 띤 인물이 바로 주인공 경애다. 경애는 파업 당시 삭발을 할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파업일기라는 글로 인해 그녀의 입지는 회사에서 굉장히 좁아진다. 고발, 하는 식은 어느 회사에서도 환영 받을 수 없다. 경애는 그저 정해진 사무용품이나 나눠주며 회사에 겨우 남아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답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깐깐하고 지나치게 정갈한 느낌을 준다. 상수와 경애 두 사람은 한 팀으로 엮인다. 마치 마이너리그 같기도 하고 문제아 반, 혹은 나머지 공부반 같다. 제대로 된 사무실이며 제대로 된 업무도 없이 둘은 무언가 열심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소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현실, 먹고 사는 문제를 배제하고 삶은 운영되는 것이 아니니까.
상수의 신경이 쏠린 '경애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화재 사건으로 친구를 잃었고 성인이 된 후엔 오래 사랑하던 남자와 이별을 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시 그녀를 찾아와 마음을 헤집는다. 경애는 그런 마음을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지에 털어 놓는다. 그곳은 상수가 언니인 척 하며, 주인으로 머물러 있는 공간이었다. 현실에선 초라한 듯 보였던 상수는 온라인에서 꽤나 강자였다. 이만명이나 되는 팔로워를 거느린 '언니'였다. 상수는 그 속의 사연들 중 경애가 있다는 사실을, '영화'와 '은총'을 계기로 알게 된다. 은총은 과거 화재 사건으로 두 사람의 삶 속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실제 인천에서 일어난 호프집 화재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상수는 경애와 과거에 이미 하나의 음성사서함으로 엮인 사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고, 그녀의 마음에 대답한다.
마음을 어떻게 폐기하느냐고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이 나 너랑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라고 말한 날이 있었고 당신은 결정했고 그렇게 욕실을 들어갔다 나오자 정작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을, 양말까지 챙겨 신은 뒤였다고. 그러고 나서 데려다주겠다는 그 사람 차에 타지 않고 택시로 강변북로를 달려 돌아오는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 되지 않았습니다.
p176
상수가, 남자가, 여자의 심리를 어떻게 잘 이해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다. 사랑과 마음에 대해서는 남녀 구분이 없으니까. 다만 '언니'라는 호칭이 얼마나 부드럽고 조언에 유용한지 새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소설 속에서 화재사건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언죄다' 페이지다. 이후 이야기는 베트남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서는 인물들의 사연 소개에 그쳤다면 베트남에서는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위로하고 기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삶에는 여러 형태의 마음들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 버리고 싶은 마음 괴로운 마음 슬픈 마음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그런 모든 마음들이 '경애의 마음'에 들어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폐기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잊었다가 때로는 꺼내보며 사는 것이다. 이 소설은 마음에게 마음이 위로하는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상수와 경애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352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인에 이야기 할 것이 '마음' 뿐이냐고 하면 아쉬운 점일 것이다. 담담한 연애 서사의 능한 작가였기에 그래도 가능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