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나이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아이엠샘]이라는 영화를 볼 때 였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와 딸의 사연을 담은 가족영화인데, 나는 당시 감기몸살을 앓고 있었다. 친구와 한 약속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이라, 영화보기를 강행했다. 그런데 영화는 지나치게 슬펐고 눈물은 참아도 떨어졌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울다 보니 점점 더 아파졌고 후반부에 가서는 결국 영화 대신 출입문을 노려봤다. 저 문이 열리면 나는 이 곳을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강렬했던 영화였다. 이후로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그때만큼 울지 않았다.
이십대 초반,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과제를 하기 위해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읽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작품을 세번째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주 밝은 조명의 지하철 안에서, 모두가 피곤에 지쳐 집을 향해 가고 있던 때였다. 혼자 책을 읽다가 운다는 것이 부끄러워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의 감정은 또렷하다. 정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지? 지나치게 선명한 조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글 말이다.
첫 직장생활에서 안 울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화장실 칸에서 몰래 숨 죽여 울면서, 대개는 그런 다짐을 한다. 내가 꼭 해내고 만다, 사실 드러워서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서러워 우는 것이다. 첫 직장에서는 미숙하니까 당연히 울 일이 많다. 그런데 나는 다섯 번째 학원에서도 울었다.
잠실 근처에 있던 논술 학원이었다. 그곳에는 나보다 육개월 정도 먼저 일하던 강사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쯤 어렸다. 원장은 젊은 여자였는데, 내가 첫 출근 한 날 오니기리와 규동, 이라는 체인 집에서 밥을 사줬다. 씀씀이가 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어달은 기존의 선생님이 커버하지 못하는 학생들 위주로만 수업하면 된다고 했다. 서너명뿐이었지만 논술이라 한 학생당 타임이 꽤 길었다. 하루 8시간동안 단 오분도 쉬는 시간이 없었다. 문제는 논술학원이라 잡무도 많았다. 다른 강사는 나보다 더 많은 인원을, 그렇게 쉬지도 못하고 매일 육개월을 꼬박, 고작 백 사십만원이라는 돈을 받고 일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주 6일 근무, 그 강사를 보며 나는 첫 직장때 생각이 났다. 그래 모르면 저렇게 당할 수 있지, 나는 주 3일 근무, 백 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당한 것은 내쪽이었다. 학원은 원생이 늘어 이사를 하게 됐다. 설 연휴 마지막날 불려가 책을 날랐다. 새로 이사한 학원은 인테리어가 무척 예뻤다. 강의실마다 유명 작가의 이름을 붙여놨다. 내가 쓰던 교실은 헤르만 헤세였다. 그곳에서 나는 정확히 2주 반을 일했다. 원장이 나에게 전임을 요구하며 제시한 급여가 그동안 내가 받은 것보다 적었고, 거기서 살짝 트러블이 생겼다. 충분히 조율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장은 새로운 강사를 뽑아 놓고 내게 인수인계를 시켰다. 물론 나는 그것이 처음엔 인수인계인 줄도 몰랐다. 내 자리를 치고 들어 온 강사 인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친절하게 굴었다. 그 강사가 들어 오고 일주일 뒤, 원장은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들어 온 지 세 달만에 마주한 종이였다. 아무 의심없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원장은 그 자리에서 내게 해고 통보를 했다. 계약서에는 추후 전임 전환,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계약 위반을 한 것이 내 쪽이었다.
그때 기분을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가 바람핀 것을 알았을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달까, 나는 원장과 마주 앉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서른도 넘은 나이였고, 강사 경력 오 년도 넘은 상태였다.
슬픔이나 감동, 눈물을 흘리는 기본 조건인 감정이다. 어릴 때는 그런 감정들이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살다보면 슬플 때보다 화가 나고 억울할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나 드라나를 봐도 슬프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런 쓸데없는 곳에 흘릴 눈물이 없었다. 세상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벼랑에 몰아 넣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있다는게, 조금 설레기도 두렵기도 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또 어떤 상황에서 눈물을 쏟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