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계획 단계에서는 ‘주제, 목적, 예상독자’를 고려하라고, 중학교 교과서에 나와있다. 지겹게 몇 번이고 아이들에게 알려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글쓰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정작 그 단계가 필요한 건 나인데 지금껏 글을 쓰면서 단 한번도 예상 독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주제 정도만 고려하고 몇 개의 소재만 생각할 뿐이지, 내 글을 읽을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핑계를 대자면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고 조차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일방적인 글쓰기만 해왔으니, 점점 더 읽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는 적당히 눈치를 봐야할 때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누가 백 원짜리 하나 주지 않지만 시간을 들여 문장을 적는 일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반성을 갑자기 하게 된 이유는 한 친구의 글을 읽고 나서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꿈을 꾸는 나보다도 더 꾸준히 글을 쓰는 그 친구에게, 브런치 구독자가 점점 늘고 있다. 초반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어렵고 알아 듣지 못하는 정보를 전달했는데, 이제는 나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을 적고 있었다. 최근에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글들은 프리랜서에 대한 것과, 임산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그 두 소재는 그 친구를 대변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낼 만한 화두를 던지고 사유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프리랜서(엄밀히 따지면 비슷한 처지겠지만)도 아니고 임산부도 아니라 크게 흥미있게 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분명 예상 독자를 고려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만이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그 경험을 어떤 그릇에 담아 내놓을지가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주로 짝사랑 경험이 많은 편인데, 간혹 소설적 픽션을 가미하기도 한다. 그게 읽는 사람들한테 재미를 준다. (아, 뭐야, 예상 독자를 고려한 적이 있었다.) 실화인 척 소설을 써도 아무도 모르고, 소설을 실화인 척 써도 사람들은 구분하지 못한다. 기승전결이 있든지 발단 전개 절정이 있든지 흐름을 맞춰 결말을 맺는다면, 주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분명 좋은 에세이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섬세하게 신경 쓰는 부분은 처음과 끝이다. 수미상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최소한 처음에 언급했던 이야기에 대해서 만큼은 깔끔한 끝맺음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수의 독자들을 고려할 정도의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일상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에게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써보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길인 것 같다. 무계획이 때로는 낭만적일 때가 있다. 그러나 글 쓰기에서 만큼은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