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by 아메리카노

나는 내가 예술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문학도 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예대를 졸업한 것에 대해서도 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열 여덟살 때부터 목표였던 대학에 합격했을 땐 정말 기뻤다. 근데 막상 입학 했을 때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수능 성적 미달로 인해 실기 반영률이 높은 학교로 돌려 입학한 사람들도 은근 많았다. 그들은 편입이나 반수를 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곳쯤으로 생각했다. 나의 성공이 그들이 실패와 비견되었다. 물론 예고를 졸업하고 예대를, 그리고 작가를 꿈꾸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과 비예술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섞인 학교를 다녔다.


나는 음악보단 미술을 좋아한다. 노래를 듣는 것보다 그림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청각보다 시각에 예민한 편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어릴 땐 화가도 되고 싶었다. 그림을 정말 못 그려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미대생에 대한 로망도 컸다. 음대 오빠보단 미대 오빠가 설레는 느낌, 학교 다닐 때도 음대보단 미대쪽을 더 기웃거렸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미대에 잘생긴 사람이 더 많았다. 음대는 예쁜 애들) 음악하는 친구는 없는데, 그림 그리는 친구는 있다. 그 친구를 최근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만났다.


그 친구와 나는 둘다 미혼이며,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정말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심지어 같은 신화창조였다. 같이 나이 들다 보니 생각보다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성격이나 생활 습관 같은 건 다르지만, 암튼 친구랑 이야기 하다가 문득 정서 표현을 각자가 배운 예술로 승화(?) 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정말 일반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공감 못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엄청 반가운 느낌이었다.


브런치에 나타나는 것도 고인물이 되어버린 블로그에도 그렇지만, 나는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슬플 때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글 밖에 없었다. 누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도 일시적일 뿐, 허망한 기분이 들 때면 아무 문장이나 마구 적고 싶었다. (친구 역시 코로나로 힘들던 시절 그림을 무지하게 그렸다고 했다.)


얼마전 독서 모임에서 작가들은 왜 기구한 삶을 사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에서 글이 안 나오는 것은 진리인 것 같다. 경험했던 하지 않았던 것도 화려한 필력으로 다듬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나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문장은 경험에서 나온다. 나 역시도 마음이 몽글몽글 편치 않을 때가 되어서만 문장을 적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오늘 조금 슬펐단 이야기다.


최근 가장 슬펐던 일은 큰아빠의 소풍이 끝난 일이었다. 오랜 병 생활로 가족들 모두 예상했지만 결말은 생각보다 굉장히 슬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아빠가 그렇게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울음, 그게 딱 맞는 말이었다. 모두에게 슬픈 날이었다. 큰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오늘은, 강의 시간에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각색한 시나리오 지문을 읽었다. 김애란 작가를 좋아하지만, 그 작품은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글이었다. 가족 이야기는 워낙 따뜻하고 감성적이니까, 그 정도는 뭐,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는 많이 울었다. 그 영화 내용이 기억나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앞에서 지문을 읽는데 조금씩 울컥거렸다. 괜히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글자를 꾹꾹 눌러 읽었다.


내게 그런 위기를 주는 작품은 또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교과서에 수록 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이다. 나는 이 소설을 지하철에서 읽을 때도 울었다. 수업 시간에 다시 마지막 대사를 읽을 때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가족 이야기에 엄청 약한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 끝은 늘, 샘이 났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먹이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도 지구 핵까지 파고 들어갈 만큼 좌절하고 슬퍼야 할텐데, 그만큼 우울감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 한 발자국을 견디고 딛어야만 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울적하고 지친 하루 끝, 이런 두서 없는 문장들은 아티스트로 가는 길과는 전혀 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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