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덕질

by 아메리카노

덕밍아웃 하자면 나는 중2때부터 신화창조였다. T.O.P 라는 음악으로 신화에게 입덕하게 됐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어디가서도 굉장히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참 좋아했다. 사춘기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덕질이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덕질의 모습은, 응답하라 1997에 거의 비슷하게 나왔으니 재 언급할 것은 없지만 암튼 참 열정적이었다. 화나고 속상하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도 당시 ‘오빠들’을 보면 모든게 풀어졌다. 한창 그런거 좋아할 나이의 아이들을 만나면 난 적극 권장하는 편이었다. 덕질은,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고. 혹자는 상대가 알아주지도 않는 걸 뭘 그리 열심히 하냐고 하기도 한다. 주는 게 없기 때문에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덕질인 것을.


어쩌면 그 나이에 가장 재미있는 것이 ‘오빠들’을 좋아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니 생각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오빠들’생각이 잘 안났다. 그것이 어른인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음악방송을 봐도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그런 프로들과 완벽하게 멀어졌다.


특히 서른을 확실히 넘기고 나서는 아이돌은 그냥 정말 아이들이 좋아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요즘 인기 있는 이들은 누군지 그들이 몇 명인지도 모른 채 슬프게 늙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빠져 좋아한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터졌다. 다이너마이트가. 디지털 싱글 발매일이라고 이미 진작 아미였던 언니가 함께 보자고 해서 그냥 옆에서 봤을 뿐인데 어라? 노래가 좋네? 신나네? 춤도 잘 추네, 하면서 어느새 나는 조금씩 방며들고(?) 있었다. 월드 클래스인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를 테지만, 적어도 난 얼마전까지만 해도 BTS가 몇 명인지 조차 몰랐다. 한 번 눈에 들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그들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마치 이제 짝사랑을 시작한 소녀처럼,


요즘 내 휴대 전화 앨범 상태, 최애는 뷔다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보고 또 보고, 찾아 보고, 읽어 보고, 검색하고 7년이라는 역사를 다 알기란 어렵겠지만 차근차근 훑어 보는데 끝이 없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쉬는 날에는 늘어지게 잠도 자고 책도 읽고 이것저것 사부작 할 일이 많았는데, 요 며칠은 그냥 방탄 소년단을 보는 것으로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위험하다, 일상 생활이 무너질까봐 두려울 정도로 너무 빠져들고 있다. 덕질의 나쁜 예가 다른 팬들보다 내가 더 그들에게 가까워 지려는 마음이다. 물론 나는 애당초 출발이 몇 년은 뒤쳐졌기에 다행히 그런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지만, 앞으로 그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초조함은 든다. 거기다 이제 와 아미라고 말은 해도 되는지, 요즘 팬클럽은 어떻게 가입하는 것인지 하나도 몰라서 공부할 것이 태산이다. 방탄의 굿즈는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데 경쟁자가 도대체 몇 명? 아니 셀 수 조차 없겠지만. 이래서 뭐든 일찍 일찍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데, 현생이 가능할까 무섭다.



유튜브 최근 감상 기록



예전 동완오빠가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라고 했는데, 아무리 미치도록 좋아도 나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할텐데. 요즘은 뭐 그런 말도 있더라, 방탄과 같은 시대를 살아서 행복하다고, 월드 클래스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 선 그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빠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생생하게 경험했다는 것이 유일했다. 코로나 블루에게 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끙끙대던 일상에 웃음나게 할 이들이 등장한 것은 참 감사한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위험한 덕질이 행복한 원동력이 되길,

매거진의 이전글한국 문학을 읽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