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by 아메리카노


나는 숙제가 싫다. 숙제를 열심히 하는 내 성격이 싫다. 다 큰 어른이라 정식으로 내게 내려오는 숙제는 없지만, 숙제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불편하다.


초중고대학교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숙제를 밀려 본 적이 없다. 엉망진창일지언정 나는 꼭 제 날짜에 제출했다. 그것이 사실 성실함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했을 뿐이다.

대학교 때 1학년때 문학개론이란 수업이 있었다. 그 수업은 매주 단편 소설을 하나씩 읽고 질문 3개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과제였는데, 초반 한달은 모두들 무난하게 해냈다. 그런데 다른 수업에서도 과제가 쏟아졌고 매주 우리는 적게는 3권의 책을 읽거나, 1편의 단편 소설을 써 내야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질문을 만들어 분석하는 리포트 과제는 꽤나 부담이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밀려는 과제 속에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그 과목의 숙제 레이싱을 완주 한 사람은 25명 중 단 두 명이었다. 나와 내 동기, 당연히 A+였다. 그 시간이 사실 나는 괴롭다기 보단 즐겁기도 했다. 1학년이었고 이제 막 소설을 배운 새내기라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문장을 분석하는 것도 모든 것이 좋았다.


3학년 때 복학한 한 선배를 좋아했다. 학교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아님 내가 어리숙해서 그런지 금세 소문이 났다. 내가 대놓고 말한 적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사람들이 두어명 이상이 모여있으면 대개 내 이야기를 수근거리는 듯했다. 그것이 불편하고 창피했는데, 나는 그 해에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조건 해야만 하는 나였다.


사회 생활에서도 이런 성격은 전연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과제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과제같은 일들 더미에 싸여 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맡고 있는 수업의 아이들의 진도 상황에 맞춰 주간 모의고사를 만들고, 고3 학생들을 위해 수능특강 지문 분석 및 적용 문제를 만든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 모임의 나약한 리더인지라 책을 읽고 정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아무리 대충해도 된다고 말려도 나는 끙끙대며 울면서 모든 것을 하고 만다. 사실 적고 보니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보다 또는 대충 해도 된다는 말보다, 애당초 나에게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솔직한 바람이다.


아, 이 글을 적는 것도 누군가 내려 준 숙제 같았으려나


어제에 이어 지나친 성실함 시리즈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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