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라탕

by 아메리카노

문득 소울푸드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지친 영혼을 달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뜻일까, 포털 사이트에서 남녀 소울푸드 삼대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다. 국밥 돈가스 제육볶음, 떡볶이 닭발 파스타가 남녀 각각에게 영혼의 음식이라고 한다. 사실 나의 최애도 떡볶이다. 힘들거나 기쁘거나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떡볶이다. 떡볶이에 관한 서사는 장편도 쓸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너무 뻔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 영혼을 자극하는 음식은 마라탕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유행인 만큼 굉장히 흔한 음식이지만, 내가 마라탕을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나의 첫 마라탕은 스물 네 살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산 기간은 모두 합해 일 년 정도다. 베이징에서 반 년 상하이에서 반 년 지냈다. 베이징에 있을 땐 몰랐는데 상하이에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음식이 중국의 북쪽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하이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베이징 음식이 그리웠다. 일상의 낙이 먹는 것이었던 내게 초반 상하이 생활은 재미가 없고 슬프기만 했다. 정 붙일 곳이 없는 기분이었다. 끼니를 거의 챙겨 먹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맛에 맞는 것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식어빠진 김밥을 먹거나, 과일을 몇 개 사먹는 정도로 겨우 살았다.

2주 정도 지나자 같은 클래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조금씩 친분이 생겼다. 혼 밥을 못하진 않지만 당시 나는 외로움에 지쳐있던 터라, 같이 밥 먹자고 해주는 사람이 그렇게도 좋았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과 일본 유학생, 한 살 많은 오빠, 우리 넷은 함께 점식을 먹기로 했다. 마라탕 가게는 기숙사에서 나와 걸어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인데, 정말 동네 사람들만 다닐 법한 곳이었다. 그곳엔 깔끔해보이지도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 촌스러운 녹색 테이블이 고작 네 개뿐이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그 가게 입구에선 육수를 계속 끓여댔다. 한쪽 벽에는 갖가지 재료를 고를 수 있는 냉장고가 있었다. 나는 먹고 싶은 걸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조금씩 맛에 차이가 난다고 했다. 고른 재료들은 팔팔 끓는 육수통에 흠뻑 몸을 축인후 나왔다. 하루 종일 같은 육수에 몇 명의 사람들이 고른 채소들이 들락날락 할지 생각하면 비위생적이지만 그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국에서 위생을 따지는 건 사치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그동안 중국 음식 중에서 ‘탕류’는 피하고 있었다. 중국에도 살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봤어도 여전히 못 먹는 것이 고수다. 마찬가지로 중식의 탕류는 뭔가 비릿한 냄새가 비위를 건드렸는데, 마라탕을 한 숟갈 먹은 이후엔 마음이 바뀌었다. 앞으로 누군가 중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묻는다면 마라탕이라고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학생들을 상대로 듣기 수업을 하던 현지 대학생 선생님이, ‘마라탕 먹고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겨 죽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전까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그 가게에서 마라탕을 먹었다. 그때마다 내가 꼭 넣어 먹는 것은 새우완자였다. 그리고 절대 먹지 않는 것은 두부로 만든 면, 그렇게 나만의 마라탕이 생겼다. 비슷하게 먹을 순 있어도 일부러 따라하지 않는 한 똑같은 맛으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마라탕의 매력이었다. 본인 스스로 고른 재료들로 만드는 마라탕, 하루에도 여러 종류가 나올 수 있는 그 메뉴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쓴 졸업 작품의 핵심 소재도 마라탕이었다. 주체의 의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는 것.


한국에서 마라탕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날의 상하이가 생각난다. 가을이었다. 쌀쌀하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던 선선한 가을이었다. 낯선 타국에 정을 붙이게 만들어 준 그곳의 마라탕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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