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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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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Apr 18. 2021

너를 만나게 된 배경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에 유기견을 돕는 프로젝트 2부작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 방송은 일도, 사람도 너무 힘들었지만 딱 하나 고마운 점이 있다면 유기견 입양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는 거다. 평소 개 농장이나 열악한 보호소를 다룬 걸 보며 유기견이 정말 많다는 건 알았다.


그러다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간 촬영 테이프를 모니터 하는데, 그때 내 생각에 금이 간 것 같다. 우리가 촬영한 보호소는 규모가 큰 데다 진심을 다해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것 그대로가 찍힌 촬영 테이프 속 개들이 가히 충격적일 만큼 불쌍하고 가여웠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 아이들의 눈이 사무치게 안쓰러웠다.


처음 보는 촬영감독에게 매달리는 눈이, 철창 너머의 손길이 간절해 보이는 눈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사람 눈길 한 번에 꼬리 치며 바라보는 그 눈들이 모여 앵글에 한가득 잡혔다. 이렇게 절박하고 애절한 눈들이 또 있을까. '마음이 아프다'와 비슷한 모든 표현을 전부 쏟아내고 싶을 만큼 가슴이 저릿했다.


그때 나는 반드시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결심했다. 비록 내가 혼자 사는 1인 가구에, 출근해서 집도 오래 비우고,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난 유기견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단 한 마리라도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늘어져라 잘 수 있는 우리 집을 공유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유기견 입양을 위해 보호소, 개인 구조자, 포인핸드 등 다양한 경로를 이용하여 마음에 드는 아이를 찾아다녔다. 포인핸드 앱을 보다 입양 신청을 넣었는데, 그때 신청한 강아지는 웰시코기와 흰색 믹스견 두 마리였다. 유난히 흰색 믹스견이 눈에 밟혀서 사진을 며칠 동안 들여다보았는데, 얼굴을 계속 보아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이름이 지어졌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것 같아 떠올린 이름이 ‘밤비’였다. 괜히 이 아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고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공고 기간이 남은 상황이니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고, 나보다 먼저 신청한 사람이 데려갈 수도 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보호소와 구조자들 SNS를 보며 데려올 수 있는 아이를 찾아다녔는데 쉽지 않았다. 1인 가구의 애로사항을 알고 있기에 거절당할 준비는 되어있었다. 하지만 어느 보호소는 입양 전 몇 번의 만남과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했고, 또 어떤 구조자는 입양 면접 질문이 혀를 내두를 만큼 상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깐깐해야만 좋은 사람을 고를 수 있으니 이해는 됐지만, 솔직히 번거로웠다. 그들 눈에 내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겠다고 지레 겁먹어 입양 신청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당장 입양자를 찾지 못하면 다음 날 보호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SNS 글을 보았다. 귀엽게 생긴 새끼 강아지였는데 정말 입양자가 없는지 마음이 쓰여 입양을 문의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확인하는 구조자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하며, 우리는 서로 기나긴 장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입양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고, 구조자가 최고의 조건을 갖춘 입양자에게 보내려고 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입양 문의를 더 받아보고 결정하겠단 말과 함께 사라졌고, 나는 '나에겐 절대 보내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좋은 입양처는 널리고 널렸을 테니.  


이해는 됐지만 상처도 받았다. 당장 입양처를 구하지 못하면 보호소 보낸다고 하지 말지, 문의는 많지만 더 좋은 입양자를 찾고 있다고 써놓지 등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기견 입양이 이렇게 깐깐하다니! 이럴 거면 돈 주고 사 오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바엔 안 키우겠다로 생각이 이어졌다. 결국 유기견 입양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을 때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한국동물구조관리 협회입니다. 강아지 입양 신청 넣어주셔서 연락드렸어요.

웰시코기랑 하얀 강아지 두 마리 신청 넣어주셨던데 두 마리 다 입양 계획이신가요?"


지원한 회사에서 합격 연락이라도 온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핸드폰을 붙들며 통화를 이어갔다. 웰시코기와 흰색 믹스견을 둘 다 데려갈 수는 없었지만 만약 둘 다 데려갈 수 있다고 하면 나는 흰색 믹스견을 데려오겠노라 결정했었다. 웰시코기는 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바라는 품종견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반대로 진도 믹스, 발바리 등 믹스견들은 품종견만큼이나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둘 다 데려갈 수 있다면 나는 이왕 믹스견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 전화는 웰시코기 순번에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내 앞에서 두 사람이 입양을 포기했고 내 뒤로 3명이 더 있다고 했다. 흰색 믹스견은 총 3명이 입양 신청을 했고, 나는 3순위였다. 그리고 아직 입양처를 찾지 못해 둘 다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고민이 필요 없었다. 사실 연락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연락이 왔고, 심지어 두 마리 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마음의 결정은 이미 했으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 하얀 강아지 데리러 갈게요!”


행여나 협회 쪽에서 마음이 바뀔세라(그럴 일은 없지만) 그 주 주말에 바로 그 아이, 밤비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그로부터 나는 남은 3일 동안 떨림과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너를 진짜 만난다니! 어쩐지 눈에 띄다 못해 이름까지 떠오르더니 우리가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밤비를 처음 본 공고                             내가 반한 똘망똘망한 콩알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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