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캣브로 Jul 19. 2022

빌어먹을 재입대의 악몽

헛개잡상인, #16

개같다. 이렇게밖에는 쓰지 못하겠다. 아니, 더 심한 욕을 하고 싶은데 이 정도로 끝낸다. 이 빌어먹을 재입대 꿈은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안 꾸게 되는 걸까. 한번은 이런 내용의 짤막한 웹툰을 본 적이 있다. 다시 군대를 들어가는 꿈을 꾸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 아들이 옆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 정도 나이가 되면 군대 꿈을 꾸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도 직각 기상을 하며 아들처럼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다.


제길, 이 꿈은 그냥 평생 같이 가는 건가 보다. 차라리 귀신에게 쫓기는 꿈이 낫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수방사로 복무했던 시절의 각종 기합들을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웃으며 얘기를 들려주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그야 아빠는 이미 다녀왔고 난 이제 가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 ‘한강철교’나 ‘원산폭격’ 같은 이름도 무시무시한 가혹 행위들을 들으며 난 생각했다.


‘아빠는 어떻게 저걸 3년이나 했지. 이런 썅, 군대 가기 싫다.’


아빠도 재입대 꿈을 꾸었을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는 군대 얘기야 추억 보정도 되고, 내가 더 힘들었다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안줏거리라도 된다. 일단 미리 말하지만, 군 생활은 내가 제일 힘들게 했다. 해군으로 2년 동안 내리 배만 탔다. 각설하고, 여하튼 추억하는 것과 꿈으로 겪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그 생생함은 이루 말할 데 없고 분노와 찝찝함이 반나절은 간다. 꿈을 거의 매일 꾸는 나의 경우에 군대와 관련된 꿈은 분기에 한 번씩은 꼭 꾸게 되는데 이번엔 더 특별했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


한 꿈에서 본입대를 포함 무려 세 번의 입대를 겪었다. 무려 그것도 해군, 육군, 해군 순서로. 기분이 안 나쁘고 배기겠는가? 해군으로 멀쩡히 전역하고서 다시 눈을 뜨니 머리는 빡빡이에 처음 보는 육군 생활관에서 입어 본 적도 없는 국방색 티셔츠 차림으로 멍을 때리는 그 느낌을 아시는가? 눈부시게 빛나던 작대기 네 개짜리 계급장은 온데간데없고, 대한민국 군인 서열 1위 예비역 병장인 나를 이등병 취급하는 그 느낌을?


"어이 캣 이병, 이 새끼 기합 XX 빠졌네."

'어이? 어이가 없네 이 새끼가. 민간인한테.'

"대답 안 해?"

". 이병 캣브로!"


이런... 꿈속의 나는 누구보다 절도 있게 관등성명을 댔다. 몸이 기억했다. 세 번의 입대 모두 간부들을 만나 난 해군 예비역 병장인데 무언가 잘못됐다고 통사정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갓 자대 배치를 받고서는 사실은 자신이 병장이라 주장하는 미친놈일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난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씩씩대며 눈을 떴고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다. 억울했다. 입대를 세 번이나 했으면 전역은 한 번이라도 하고 꿈에서 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대한민국 예비역들에게 묻고 싶다. 나만 이러는지. 이 빌어먹을 꿈을 꾼 며칠 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몹시 구려서 병가를 낼까 고민했다. 그랬다면 사유는 뭐라 적어야 했을까? 악몽? 트라우마? 사유는 재입대가 좋겠다. 그래야 회사도 이 미친놈이 진짜 아픈가 보다 생각할 테니까.


염병...


매거진의 이전글 클럽 VI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