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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ul 29. 2022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여름 고양이

4냥꾼 캣브로, 일흔두 번째 이야기




4냥이들이 더위를 피해 냉장고에 모여 있다. 더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냉장고 위는 의외로 시원하다. 본묘의 요청에 따라 츠동이는 사진으로만 출연한다.


매년 여름 냄새가 찐~하게 나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나의 초딩 시절이다. 그 시절 남자애들이 다 그렇듯 밖에서 한참을 동생과 놀다 땀을 삐질 흘리며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부터 켜는 게 일과였다. 한 대밖에 없는 컴퓨터는 당연히 내 차지였고, 뒤에 선 동생은 항상 이렇게 소리쳤다. “한 판만 한다면서! 빨리 비키라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웃으면서 손 좀 먼저 씻으라고, 사이좋게 한 판씩 하라면서 선풍기를 틀어 주었다. 활짝 열어 둔 베란다 창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아빠가 작동한 구형 선풍기의 잔망스러운 바람이 서로 경쟁하듯 땀을 식힌다. 에어컨이 없어도 어린 시절의 여름은 더 시원했다.


"거참, 시원하구먼~" 에어컨을 켜면 보통 덩어리들이 먼저 찾아온다. "앗, 이것은 에어컨 트는 소리?"


이건 어쩌면 기억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풍경에 가깝다. 게임 삼매경인 나의 뒷모습과 그런 날 바라보는 아빠의 표정이 그려지니 말이다. 제대로 본 적 없지만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선풍기가 고장 났을 때 아빠가 나와 동생을 위해 밤새 부채질을 해 줬던 것도 알고 있다.


풍성한 털옷을 입고 더위에 지쳐 있는 고양이 동생들을 위해 나도 아빠처럼 무언 해 줄 수 있을까? 일단 냥이 동생들에게 사과부터 해야겠다. 늘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느라 한낮의 열기 속에서 지쳐 있을 녀석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밤새 쌓인 냉기가 이렇게 쉽게 사그라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에 날생선 잘못 먹으면 큰일난다. 기다려. 괜찮은지 형아가 먼저 먹어 볼게." 캣닢 생선을 독차지하게 위해 동생들에게 사기를 치는 츠동이.


방금 갈아준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는 녀석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름을 나고 있는 중이다.


아빠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는 일은 올해도 글렀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다행이다. 손가락만 까딱 하면 서늘한 바람이 쌩쌩 나오는 시절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게으른 고양이들 옆에 같이 자빠져 팔베개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부지런히 기록을 남기는 일만큼은 미루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에어컨 전기세는 내가 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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