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긍정 Dec 18. 2022

이문세 콘서트 그리고 엄마


 전 편에서 이문세 님의 콘서트를 잠시 언급했다. 며칠 전 나는 엄마와 함께 이문세 콘서트를 다녀왔다. 엄마와 함께 이문세 콘서트에 가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닐 때였다. 향수병으로 힘들어하던 시절이 잠시 있었다. 유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들이 전부 귀국해 한국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을 때가 있었다. 현지인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이 있었고 다들 많이 챙겨주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외로움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 할 친구가 없어서였을까? 주변에서 다들 잘 대해 주었음에도 나는 점점 더 외롭고 쓸쓸했다. 그 해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 외로움은 정점에 다 달았고, 결국 나는 향수(鄕愁)라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엔 한국 드라마 DVD를 엄청 빌려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익숙한 한국의 거리들을 보며 '내가 저 속에 있다고 상상을 해보자' 하며 눈을 감고 상상해보기도 하고, 최신 K-POP 음악을 들으며 한국 유행에 따라가 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이유 리메이크 앨범을 질리도록 듣고 또 듣다가 문득, 원곡들이 듣고 싶어 져 원곡을 찾아서 들어 보았다. 그러다 꽂힌 게 이문세. 전곡을 다운로드하여 매일 같이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이문세 님의 팬이 되었다.


MBTI 파워 E에 해당하는 나는 늘 휴일은 약속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향수병에 걸리고 나서는 친구들에게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늘 집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곤 했다. 나는 도코로자와 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살던 집 바로 뒤에 쭉 뻗어 있는 큰길이 있었는데 도코로자와 플랫폼과 철길이 보이고, 덜 커 덜컹 전철이 지나가는 모습과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그 풍경은 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는 절경이다. 굉장히 일본스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이때 늘 나와 함께 걸어주던 벗은 이문세의 노래였다. 나는 이문세의 노래 중 옛사랑을 가장 좋아한다. 이 노래 때문에 사실 기타도 구입했다. 독학을 해보겠다며 쉬는 날마다 책 보고 유튜브 보면서 노력해 봤지만, 손가락만 아플 뿐... 그 기타는 한국까지 데려왔으나 창고에서 방치만 되다 재작년 어느 날 곰팡이에 지배되어 결국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말았다... 이문세 노래를 이때 정말 많이 들었고 얼마 전 콘서트에 갔을 때 덕분에 모르는 노래가 없었다. 사실 이문세 님의 곡들은 쓸쓸한 노래가 많다. 나는 그 쓸쓸함이 좋았다. 그래서 향수병이 낫지를 못하고 더욱더 병환이 깊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이따금 든다.


향수병은 결국 회사에 장기 휴가를 내고 한국에서 2주 정도 지내고 나서야 사라졌다. 결국 고향이 약이었나 보다. 이 병으로 인한 후유증은 전혀 없었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노래 취향. 나는 신나는 걸그룹의 음악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 후로부터는 이문세, 윤종신, 김광석, 김현철 님들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그 취향은 8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엄마와 함께 나누다 엄마가 이문세 님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렸을 때 유일하게 좋아하던 연예인이 이문세라고 했다. 이때 나중에 꼭 엄마와 함께 이문세 콘서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버킷리스트에 적어놓게 됐다.


<엄마랑 이문세 콘서트 가기> 이게 참 뭐라고. 오래도 걸렸다. 무려 8년이나 걸려버렸다. 세월은 빠르고 현생은 왜 이리도 바쁜지. 모든 게 핑계라는 걸 잘 알지만... 결혼, 출산, 육아 그리고 취업에 워킹맘으로 바쁜 삶을 살다가, 찬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이문세. 그리고 콘서트. 초록창에 이문세 콘서트를 검색해보았다. 웬걸. 콘서트 표가 판매 중이었고 이미 전석 매진이라 대기를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운명처럼 월급날 대기표가 빠져 연락이 왔고 자리는 2층 맨 앞자리로 꽤나 좋은 자리였다!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 12/9일 금요일 시간 비워놔!!!"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했다. 콘서트를 보다 보니 "오빠 잘생겼어요!" 하며 소리 지르는 적극적인 어머니들도 많았지만, 우리 엄마는 조용히 이문세 아저씨가 우리 쪽을 쳐다보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정도의 소심하고 조용한 리액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34년을 함께한 나는 안다. 마음만은 어릴 적으로 돌아가 이 순간을 즐기고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효녀는 아니다. 손자를 안겨주고 난 후, 몇 년 만에 효도라는 것을 해 본 것 같았다. 이문세 님은 2년마다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2년 뒤에도 또 오자고 약속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약속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9, 영화감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