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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긍정 Dec 18. 2022

19, 영화감독

 

 얼마 전, 2022 서울독립영화제의 영화 한 편을 보고 왔다. 친구와 함께 보려고 2장을 예매했는데 친구가 일이 바빠 가지 못하게 되어, 함께 갈 사람을 인터넷 카페에서 구해 영화 당일에 만나기로 했다.

 채팅으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만나기로 한 분의 나이를 알게 됐는데, 얼마 전 수능이 끝난 고3 학생이었다. 우와 이렇게 어린, 그것도 학생한테 티켓값을 받아야 하나? 요즘 10대들 무섭다던데 일진은 아녔으면 좋겠다! 하며 이런 만남을 처음 해 보는 티를 팍팍 내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영화 당일, 학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회사일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압구정 CGV로 향했다. 영화도 너무 보고 싶었던 터라 잔뜩 기대 중이었고, 그 학생은 어떤 학생일까 궁금하기도 해,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영화관 안쪽에서 엄청 앳된 얼굴의 소녀가 전화를 받으며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오 19살이 이렇게 아가아가 했단 말인가. 아니다.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것인가? 그래도 다행이다. 저 친구.. 일진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린 이 독립 영화가 보고 싶어서 만났을 뿐이고,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일이 나에게는 급선무다. 그래서 집은 어디냐, 밥은 먹었냐, 영화는 좋아하냐, 팝콘 먹을래요? 등등.. 스몰 토크를 이어가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의 꿈이 바로 영화감독이라는 사실! 영화를 좋아해서 감독의 꿈을 갖게 되었고, 벌써 한 대학의 영화과에 합격도 했다는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영화들을 보고 싶었지만 수험생의 신분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한 편의 영화도 예매 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카페에 올려놓은 글을 보았고 내 덕분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며 나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사실 내가 해 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시간이 되어 상영관으로 입장을 했다. 영화 시작을 기다리던 중, 이 친구가 나에게 흘리듯 이야기했다.


"저도 10년 후에는 이곳에서 제 영화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마구 설레기 시작했다. 19살, 뭐든 꿈꿀 수 있는 나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나이. 이 캄캄한 영화관 속 나는 16년 전, 나의 19살 고3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의 꿈은 '배우'였다. 막연히 무대에 서 있는 것이 마냥 좋았던 나였다. 하지만 34살이 된 나는 지금 연기와는 단 1도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가끔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좇았다면 나는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스치기도 했고, 34살인 지금도 꿈이 많은 나는, 이 친구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방금 본 영화에 대해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근처 압구정 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영화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조금은 어려웠고 개봉한다면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나는 영화뿐 아니라 오늘 이 하루, 이 시간이 참 값지게 느껴졌다. 오늘 이런 청춘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쑥스럽고 오글거리는 이런 말은 나는 절대로 전할 수 없었다.

 집이 반대 방향이라 우리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먼저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같이 영화 봐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더 재밌었어요. 나중에 oo님 영화 꼭 보러 갈게요 :)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제 엄마와 함께 이문세 콘서트에 다녀왔다. 글쎄 고막 이녹아 내리는 줄 알았다. 목소리만 좋은가? 무슨 아저씨가 이렇게 잘생기고 섹시 하담. 아니 말솜씨는 또 얼마나 훌륭한지.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빵빵 터지고 센스가 흘러넘친다. 2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는 역시였다. 이문세 님의 공연은 꼭 한번 다녀오시기를 추천드린다.


 '꿈'이라는 것이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그런가, 마치 SNS의 알고리즘을 타듯 이문세 님의 콘서트에서도 이 '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콘서트 중, 전광판에 [여러분은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렸을 적 꾸었던 꿈을 이루셨습니까?]

뜨악, 이문세 님에게 나의 고민을 들킨 것만 같았다. 34살.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에 따른 고민도 참 많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글쓰기.

 

 6개월 전, 브런치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여 겨우  <축하합니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뛸 듯이 기뻤지만 막상 작가가 되고 나니 발행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너무 허접한 것 같고, 사람들이 재미없어할 것 같고,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많은 19살 소녀를 만나고 와서 뭔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라며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바로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에게 이런 좋은 에너지를 받아, 미루어 두었던 일을 이렇게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루지 않고 글을 이어 나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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