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한 병
나는 소주를 못 마신다.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못 마셨다. 소주의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사람이었다. 한 입만 맛봐도 알코올의 향과 쓰디쓴 어른의 맛에 어질어질 해졌다. 21살 유학을 떠나기 전에 마신 소주를 마지막으로 약 25년간 더 이상 소주와의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삶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법. 내가 요즘 이 소주 때문에 고민이 많다. 소주 냄새만 맡아도 취하던 내가 '새로'라는 소주를 맛보고 나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맛본 '새로'. 이 소주는 왜인지 소주 특유의 알코올 냄새와 맛이 나지 않았다. 약간은 맹물 같은 맛이 나는 것도 이 알코올이 내 목구멍까지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일조했다. 신세계를 맛봤다. 목 넘김이 괜찮았던 이 새로는, 그동안 내가 꿈꿔 왔던 로망들을 이루어 주고 있다.
소주를 못 마시지만 소주가 땡기는 안주들이 있다. 바로 회, 곱창, 삼겹살. 이런 음식을 먹을 때면 먹지도 못하는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결국 소주잔에 물을 담아 친구들과 짠! 을 하며 기분만 살짝 내고는 맥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심지어 내 주량은 소주 한 병. 컨디션 좋으면 그 이상을 마셔도 멀쩡하다. 내 주량을 파악하고 나서부터는 25년간 소주와 먹고 싶었던 안주들의 도장 깨기가 시작 됐다. 술을 못 마셔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술꾼이 되어 버렸다. 그 덕에 얻은 내 뱃살은 그닥 반갑지 않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 나름대로 즐거운 알코올 인생을 즐기고 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 법. 너무 과음하지 않고 건강을 해치지 않고 즐기는 선에서 계속해서 도장 깨기를 이어 나가 보려고 한다. 원래도 기다려지던 주말이 더욱 기다려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