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치앙마이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벌써 3주를 지나가고 있다. 한 달이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닌 것도 같다. 이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런 '스트레스 0'에 가까운 삶을 또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해질 때도 있다. 한 달 살기에 돌입하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며 책도 많이 읽고 경치 좋은 곳을 천천히 거닐며 사색을 즐기기도 하고 나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생각해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무슨 개똥 같은 생각이었나 싶다. 바쁘다. 정말 왜 이렇게 바쁜지, 문제는 바로 '나'이겠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먹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는 늘 자기 전 유튜브 검색, 구글 검색으로 다음 날 어디 갈지를 생각하기 바빴다. 나에게 주어진 나 혼자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 아이는 9시쯤 떠나서 4시쯤 돌아 오지만, 나는 3시까지는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한숨을 돌려야만 피곤해서 아이에게 괜히 짜증 내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 집 밖으로 나가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또한 '나'이다. 새로운 장소를 구경하는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셔야만 잠에서 깰 수 있고, 조금만 불편하거나 많이 먹어도 금방 체해버리는 '나'는 태국 치앙마이에서도 쉽게 발견되었다. 또, 혼자 어디든 갈 수 있고 잘 노는 것쯤이야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나'이기에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들어주는 것도 굉장히 자신 있는 부분이지만, 자취를 하면서 단련된 혼잣말과 약속이 항상 많은 나는 수다가 내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라고도 생각하고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친구라고는 아들 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 느낀 것이, '말하지 않는 것의 기쁨'이었다. 내가 현재 스트레스가 0에 가까운 이유는 혹시 말을 하지 않아서 인가? 여러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어서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토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인데, 딱히 말을 조심할 필요도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지금 이곳은 우기라 비가 자주 내린다. 비가 며칠간 연달아 내리면 우울해지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며 나에게 이런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결론은, 나도 모른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기는 하겠지만 죽는 날까지도 명확히 답을 내리지는 못하겠지 않는가.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어딘가 센티한 날인 것 같다. 더 돌아다니면 몸살이 날 것만 같아 한 이틀 넷플릭스나 보며 침대에서 요양을 했더니 더욱 이런 기분이 드나 보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든 안 하든, 이 장기여행은 일개미로 돌아갈 나에게 언제 또 올지 모를 귀한 시간이었다는 것.
소중한 시간을 골머리 썩으며 어려운 철학 공부에 쓰지 말고 남은 일주일은 더 바짝, 더 신나게 놀다 개미굴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