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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Dec 06. 2024

글은 누워있어도 어디까지든 가고, 사랑은 일어나 나아가

12월 3일, 그날 밤을 떠올리며


12월 3일, 45년만 일이었다. 뉴스를 처음 봤을 때는 믿을 수 없었다가, 엄습해오는 공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광주의 5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없다는 광주의 붉은 5월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많았다기보단,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문과생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사람 이야기라면 내 삶을 멈춰세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사, 사람의 삶이 쌓인 이야기였다.



특히, 근현대사는 더 의미가 컸다. 좋은 국어선생님과 근현대사 선생님을 만난 덕에 5월의 광주에 다녀올 수 있었다. 더 가까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묘지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의 섞인 눈물과 갑작스러운 이별. 그 어느 곳보다도 삶과 죽음이 바짝 붙어있었던 경이로운 곳이었고, 나는 자연스레 정치학도가 되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정치란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수많은 폭력의 시간을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인본주의를 외치며 인문학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인문학을 파는 사람이 닿는 곳이 결국은 철학, 신학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나는 이소라의 '아멘'을 듣고 있다.



조금도 웃고 싶은 마음이 없고, 조금의 장난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없다. 조금이라도 이 일로 웃고 싶지 않고,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이 일이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수까지 가지 않길 바라며 내 마음의 보초를 서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름만큼이나 멋지진 않다. 역사적으로 권력은 늘 한곳으로 쏠려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본인의 위치를 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가. 권력이 시민의 뜻을 벗어날 때, 역사는 끔찍한 폭력의 시간을 기록해가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5.18이 그랬다. 귀가하던 사람이 집으로 오지 못했고, 지나가던 농아가 맞아 죽었다. 애국가를 부르고 있을 때, 총포 소리가 났다.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못하던 때였다.



령이 떨어지자마자 길 밖으로 나온 시민들. 민주주의는 그 주된 권리가 시민에게 있지만, 시민이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 덕에 평소 시민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도 흘러간다. 민주주의에 해가 되려는 순간, 진정한 주인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장갑차를 막아서고, 지지대가 되어 받쳐주고. 군인들을 막기 위해 막아서고, 총구를 밀어낸 날 것 그대로 신성한 마음들. 우리는 모두 공포 속에 질식해간 그 도시의 그날을 알고, 또 기억하고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에 있어선 아주 보수적인 태도로 보아야 한다. 한 번 총소리가 나면 거침없이 사상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한 번 깨진 평화는 수십 년이 걸쳐서야 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의 맛은 선악과 같고, 그의 원죄는 태초의 것처럼 늘어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결단만큼은 내려선 안됐다.



언젠가 통신이 터지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의 공포를 다시 읽어가며, 결국 평화를 위해 내던져질 것은 그간 모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고, 한 사람에게 딱 하나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게 될 것이다.



기꺼이 그것을 내던지며 나아갔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떤 책무감, 얼마나 편안하게 이 시간을 누리고 살았는가에 대한 자책, 나는 어떤 세상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민. 작은 각오를 하게 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고작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는 나 하나뿐일지라도.



글은 누워있어도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다. 이 담을 넘을 수도 있고 세기를 넘어갈 수도 있다. 사랑은 일어났을 때에서야 나아갈 수 있기에 나는 움직여 사랑을 남길 것이다. 어떤 세상이 와도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당신들에게. 우리의 부모님이, 조상님이, 우리의 이웃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안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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