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꾸다가 눈을 떴는데, 잠이 한 번에 깨지 않아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적어도 솜이유자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그랬다.
솜이와 유자는 동배에서 태어난 남매인데 사연이 있어 유자를 조금 더 늦게 데리고 오게 됐다. 새끼일 때 하도 사이가 좋았던 남매여서, 혹여 서로를 기억하고 있을까 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합사한 첫날, 솜이의 하악질에 나도 놀라고 순둥이 유자도 놀랐던 게 아득하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둘은 잘 지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놀아줘도 밤만 되면 날뛰는 냥나니들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셀프감금을 자처하며 잠을 잔다. 물론 또 다른 냥나니인 유자도 내 방에 함께 갇혀서 잔다. 유자의 주 서식지가 내 방이기도 하고 화장실, 밥과 물까지 다 방에 구비되어있어 문을 닫고 잔다. 자다가 깨면 혼자서 놀다가 밥을 먹고 또다시 잘 자는 것 같다. 가끔은 자고 있는 내 몸뚱이 위에 장난감을 얹어놓을 때도 있다. 한밤중에라도 놀자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병약한 집사는 애써 무시하고 잠을 잔다.
유자는 가끔 내 베개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발치에서 자기도 하고 다리 사이에서 자기도 하고 아무데서나 잘 잔다. 솜이처럼 예쁘게 똬리를 틀고 자는 것도 아니다. 행위예술을 하는 것 마냥 잔다. 고양이에게 가장 연약한 부위라는 배를 이렇게 드러내 놓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자는 유자를 보면 내가 있는 이 공간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지를 느끼게 된다.
유자를 데려왔을 때쯤 나의 불면증은 조금 더 심해져 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 고작 몇 번 더 깨는 것이지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유자와의 적응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무렵의 나는 조금 더 엉망이었다. 잠이 부족할 뿐인데, 이것이 누적되다 보니 죽던지 자던지 둘 중에 하나는 하고 싶단 생각이 은연중에 들 정도였다. 그게 고양이 탓이 아님을 알기에 유자가 잘 잘 수 있길 바라며 함께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같이 밤엔 잠을 설치고, 낮엔 낮잠을 또 같이 자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일상은 어느 날 바뀌는 것이 아니라 차차 변해간다. 자주 꿈을 꾸는 나에게 무서운 꿈을 꾸는 것은 사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독하게 무서운 꿈을 꿔서 오히려 잠이 깬 것이 감사한 날이 있었다. 비몽사몽 꿈의 공포가 가시질 않아 얼른 현실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피곤이 쌓인 탓인지 정신이 깨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 옆에서 유자가 멀뚱히 누워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에 잠을 자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단 사실 하나로 유자 딴에는 기뻤는지 큰 소리로 골골거렸다. 유자가 들려주는 골골송 한 번에 이끌려 나는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유자의 털을 가만히 쓰다듬다가 다시 평온하게 잠이 들었고, 유자 덕분인지 꽤나 잘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멋지게 자는 유자....... 가끔씩 눈도 뜨고 잔다..
작은 고양이의 세상에 이렇게 큰 내가 한순간에 푹 잠긴다. 고롱고롱 내쉬는 숨 몇 번에 차고 넘칠 만큼의 사랑을 가져다준다. 작은 네가 나보다도 더 큰 사랑을 준다.
너는 나를 자꾸만 부른다. 갈라진 털끝마다 온기를 끌어와 골골골 나에게 뿌린다. 고양이 테라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네가 낮이고 밤이고 떨고 있는 내게 최고의 안식을 가져왔다며 사랑을 잔잔히 전한다. 내가 잠든 시간까지도 사랑을 전해준다. 고양이의 사랑 덕에 나는 이 세상에 잘 매여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