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동생을 두길 참말로 잘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보풀 핀 스웨터에 하루 종일 앉아서 햇살을 받고 있는다. '언니는 이 옷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 하고 솜이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솜이가 앉아있는 것을 보니 스웨터로써의 수명만 다한 것이지, 고양이들의 깔개로 새 몫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화분 구석에 올라온 작디작은 새싹을 먼저 발견하여 빤히 바라보고 있는다.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먼저 발견해서 유심히 보고 있는다. 무언가 골똘히 보고 있어서 쫓아가 보면 그곳엔 원래 있었던 것이지만 내가 놓치고 산 것들이 있다.
작은 고래밥 박스에 몸을 욱여넣고 좋아하는 유자를 본다거나, 제트기보다 빠른 황금 똥파리를 잡고는 의기양양한 솜이를 보면 행복이란 게 실은 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황금 똥파리가 집에 들어온 날, 솜이는 혼자 전시상황을 가정한 것처럼 뛰어다녔다. 오늘 내로 잘 수 있을까 걱정한 것도 내가 솜이를 과소평가한 탓이었고, 솜이는 침입자를 금방 잡아냈다. 그 날, 솜이가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그 얼굴을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유자에게 딱 맞다고 믿어주고 싶은...고래밥...박스...
솜이와 유자, 고양이 세계의 행복은 인간의 것보다 단순한 걸까. 동생들이 보여주는 행복이란 가볍고 사소하다. 이런 게 행복이라면 놓치고 산 것이 서운할 정도이다. 고양이들은 발톱을 깎는 시간을 빼곤 거의 매일 매시간이 행복한 것 같다. 원래 좋아하던 자리가 질리면 금방 새로운 자리에 가서 애정을 듬뿍 준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것 마냥 새로운 자리를 사랑한다며 앉아 행복하다며 골골거리고 있다.
내 삶은 늘 동생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채워져 왔다. 작은 행복은 성에 차지 않아 음미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쳐왔고, 큰 행복을 좇다 보면 분에 맞지 않아 버벅거리다 모든 걸 놓쳐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선 행복이란 왜 이렇게 멀리에 있는 건지, 대체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 경지에 이른 건지 질투도 났다. 점점 더 나만 못나지는 길을 걸었다.
오래된 것에는 시간이 더해져 새로운 가치가 생길 수도 있다. 작은 줄만 알았던 기쁨이 곳곳에 퍼져 오늘의 삶을 지탱하는 굳은 의지가 될 수도 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도 한다는데, 곳곳에 놓인 행복을 만나다 보면 나는 내내 행복할 수도 있다. 겨우 요즘에서야 사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보니내가 그렇게도 애타게 좇던 큰 행복과 그 허상은 무엇이었을까 싶다.
나의 두 동생이 보여주는 수많은 행복을 배운다.행복은 정말로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몸소 보여준다. 똑같은 창밖의 풍경일지라도 매일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평온히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고 한다.
과거의 내가 저지른 실수처럼 행복은 잡으려 할 때 잡히지 않으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 된다는 어렵고도 단순한 진리를 배운다.행복은 나의 뒤에서 늘 동반하고 있기에 행복은 좇는 것이 아니라, 걷다 보면 행복이 곧 길이자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될 것이다. 내가 버리려던 재미없던 나의 삶이, 동생들 덕에 소소한 행복과 고양이가 주는 사랑만큼의 따뜻함으로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