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단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자의 포근함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릎냥, 개냥이다. 유자는 다리에 누워서 자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양반다리로 앉아있으면 헐레벌떡 달려와서 눕고, 옆에 왔는데도 누울만한 다리 모양을 해주지 않으면 곁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는다.
조용히 보고 있다가 도무지 집사가 다리를 펴주지 않을 것 같으면 때론 말도 한다. 꾸에엥. 발로 건드려보기도 한다. 유자는 간격을 좁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함부로 다가오지도 않고, 급하게 다가오는 법도 없다.
웃긴 건 자기가 먼저 다가오는 건 되지만, 내가 다가가는 것은 '참아준다'는 식이다. 앉아서 식빵을 굽고 있는 유자에게 다가가면 유자는 멀어진다. 바로 자리를 뜨진 않지만 내가 치근덕거리는 몇 초간은 참아주다가 이내 옆으로, 조금 더 옆으로 옮겨간다. 그렇지만 내가 그 자리를 떠나서 돌아다니면 유자는 또 나를 따라다닌다.
뒤통수가 따뜻해서 보면 유자가 있다!
수험생, 취준생일 시절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갔다. 운동을 안 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절을 다칠 일은 없었기에 병원을 방문할 정도로 아픈 것이 의아했다. 어쨌든 정형외과에서 진찰을 받아보니, 너무 오랜 시간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게 무릎에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다리를 그럼 쭉 펴고 앉는 것이 무릎에 좋을지, 몸 쪽으로 당겨 앉는 것이 좋을지를 여쭈었다. 선생님은 너무 가까운 것도, 쭉 핀 것도 무릎에는 좋지 않다고 하셨다. 발이 몸에서 적당히 먼 정도로 편 것이 가장 좋으니 당분간 양반다리는 금지라고 하시며 몇 가지 약을 지어주셨다. 참 어렵다.
고양이를 다리 사이에 눕혀놓고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 사이라고 안 그럴까 싶은 것이다. 친해져보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해봐도 잘 안 되는 사람이 있고,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 얼기설기 엮은 인연이 되어 어느새 친해져 있는 사람도 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더 다가갈지, 멀어져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는 건지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내 무릎을 피는 것도 적당히 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데, 타인과의 거리 조절은 얼마나 더 세심해야 인간관계를 돌볼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고양이처럼 일단 귀엽기라도 하면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진 않았을 것도 같다.
집사야 네가 읽는 시집이 재밌구냥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고양이들의 시선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솜이와 유자의 시선 끝에 머물고 있는 나는 그때서야 자리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순간만큼은 서성이지도 않고, 어딘가에 끼여있지 않은 내가 된다. 집사로서는 온전히 산다.
나는 흔들리고 자주 휘청거리지만 고양이는 나를 보고 비웃는 법이 없다. 강아지들처럼 늘 살갑게 치대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머무르는 시선에 큰 다정이 담겼다. 내게 적당한 시간을 주고 근처에서 기다린다. 그 시간이 지나면 와서 말을 건다. 자리를 내어주겠냐고. 고양이만큼만 거리 조절을 잘하면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될 것 같다.
눈빛 뭔데......
꾸애앵하고 말을 한 이후에도 다리를 안 펴주면 나부끼는 가을 낙엽마냥 주변을 나뒹구는 고양이를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