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아주 부지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당신이 만난 고양이 집사가 옷에 털을 붙이고 나왔다고 할지라도.
고양이 털은 대단하다. 솜이유자를 데려온 이후로 한 번도 옷장에서 꺼낸 적 없는 옷에도 털이 붙어있다. 비닐 커버를 씌워놓아도 그 속에 털이 있다. 가끔은 내 눈에 보이는 이것이 무엇인가, 헛것인가 하다가도 퍼뜩 정신을 차려 이건 고양이 털이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원래 나는 어두운 색깔 잠옷 바지와, 검은색 양말을 좋아했는데 솜이유자와 함께 살면서부터 까만 옷을 온전한 까만색으로 입는 것은 진작에 해탈했다. 잠옷은 밝은 색깔로, 양말의 발바닥은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털을 붙이고 살기로 한 것이다.
깔끔한 것,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솜이유자를 데려온 후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하루에 두세 번을 청소해도 허공에 날아다니는 털들이 어딘가에 가서 앉으니, 청소를 열심히 해두어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출하기 직전에 돌돌이라고 불리는 테이프클리너로 옷을 정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밝은 옷이라고 옷에 돌돌이를 하지 않고 나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던 적도 있다. 나란히 걸으며 팔이 스쳤던 친구의 까만 가디건이 하얗게 변한 것이다. 또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서는 털을 떼주는 사려 깊은 분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을 아무데서나 만나볼 수 있다
주변을 맴돌고 있는 고양이들과 그런 고양이들의 털과 함께 살다 보면 무엇을 하든 고양이와 함께 하게 된다. 외출을 할 때면
'옷을 고른다 - 고양이 털을 떼낸다 - 옷을 입는다 - 고양이 털을 또 떼낸다 - 털이 붙었나 확인한다'
이런 식의 과정을 겪는다. 가방을 챙길 때도
'소지품을 챙긴다 - 고양이를 가방에서 꺼낸다 - 소지품을 또 챙긴다 - 고양이를 가방에서 또 꺼낸다',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곧장 달려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삶이다. 예전의 나는 시간을 촉박하게 두고 준비하고 허둥지둥 달려 나가는 시간을 살았다면, 지금은 고양이를 늘 염두에 두고 시간을 더 여유롭게 쓰게 되었다. 고양이를 챙겼을 뿐인데 내 시간이 더 생겼고, 나의 시간을 좀 더 살뜰히 챙기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귀찮았던 적도 있지만 곳곳에 뿌려진 고양이들의 흔적과 나를 따라다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나를 걱정하는 것도 같다. 언니, 오늘은 어디가? 누나, 오늘은 빼먹은 거 없어? 고양이들의 포근한 걱정이 내 주변으로 폴폴 날려 다니는 것이 좋다.
우리가 함께할 앞으로의 10여 년간은 더 고양이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살아야지. 고양이들이 선사하는 따뜻한 여유. 앞으로도 내 모든 시간은 고양이를 곳곳에 끼워 넣고, 또 잘 다듬어야겠다. 경로를 재설정해가며 솜이유자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천천히 살아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