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냥무로 성장했습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by 정윤

이사를 했다. 통근시간이 2시간씩 걸리는 데다 휴가를 쓰지 못해 새벽녘부터 일어나서 아빠와 오빠랑 먼저 나서서 고양이들만 새집으로 옮겼다. 근하기까지 20분가량의 시간을 솜이 유자와 보냈다.


예민한 솜이는 케이지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동의 공포를 직감한 건지 내내 울었었다. 새 집에 오고서도 최선을 다해서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이곳에 없는 고양이가 되고 싶었던 건지 케이지 제일 끝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언니야 나는 아무것도 안볼란다....


그리고 예상처럼....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유자는 빠르게 적응을 했다. 새 집에 오고 나서 유자도 케이지 안에서 몇 번이나 울어서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이 5분을 가지 않았다.

집사야 여기가 새집이냐!

금방 적응해서 방안을 내내 돌아다녔다.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유자는 이사도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까지 본 이후, 나는 출근해서 가족들에게서 받은 카톡으로 아이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솜이는 케이지에서 내내 꼼짝도 안 했는데, 유자가 가관이었다. 솜이가 긴장을 풀길 바라며 케이지 앞에 뿌려놓은 간식을 먹으러 자꾸 케이지에 들어가서는 보물상자라도 찾은 것 마냥 머리를 넣어서 간식만 쏙쏙 빼먹고 나왔다 한다.

솜이 너 왜 간식도 안먹냥 고맙게!!!!!!!

그런데 겁먹은 솜이를 움직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등장이었다. 솜이는 내 동생이면서도 우리 엄마의 진정한 딸 같다. 나는 검은 머리 짐승이라 엄마에게 잘 못해주는 것이 많은데, 솜이는 엄마에게만큼은 온 마음을 다한다. 예전 집에서 짐을 챙기느라 좀 늦게 도착한 엄마가 솜이를 부르자마자 케이지에서 꿈쩍도 안 하던 애가 엄마를 보고 뛰어나와서 그걸 본 오빠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는 잘 마쳤고, 고양이들도 이사 당일 밤부터는 적응해서 잘 돌아다니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께서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솜이 유자는 동배에서 태어난 남매 고양이다.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면, 솜이는 나를 보고 숨었고 유자는 내가 무엇인지 몰라(?) 숨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엔 솜이는 자기가 할 일을 하고 놀았고 유자는 여전히 내가 무엇인지 몰라 옆에 있다가 솜이를 따라다녔다.


강화도 친구의 집에서 서울까지 광역버스를 타고 나오며 겨우 3개월령인 애들을 한 케이지에 넣고서 그 속을 보는데 기특하고 장한 모습에 눈물이 났다. 겁먹은 솜이를 유자가 핥아주고, 유자가 멀미를 할 쯤엔 솜이가 유자를 달래주는 것을 보았다. 장거리 이동을 버텨준 아기 고양이 솜이 유자가 고마웠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나를 따라나서 준 고양이들이 고맙고 미안해 꼭 행복하게 해줘야겠다 싶었다.


그때 이후로 애들이 냥생 최대의 고난을 겪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아이들의 성격을 다시 한번 잘 알 수 있었다. 가급적 애들이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떤 대소사 앞에서도 앞으론 고생을 덜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난 뒤에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뿌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다. 다만 고난은 뿌리의 양분이 되어 더 굵은 뿌리로 이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솜이는 조심스럽지만 천천히 적응을, 유자는 무엇인지 몰라도 부딪혀가며 적응하고 있다. 3년 전의 그 모습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어쩌면 고양이들도 나를 처음 봤을 때와 똑같다 여기고 있을도 모르지만 우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크고 단단하게 자란 뿌리 깊은 냥무와 집사.

솜이가 좀 더 어렸을 때. 고생한 솜이를 오늘의 엔딩 사진으로...


고양이 세계의, 집사의 빅 이벤트가 지나갔다! 이제 새로운 집에서 행복만 하길.


TMI를 놓고 가자면 고난은 유자에게 개인기를 하나 더 늘려주었고, 이제 혼자서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켜는 법을 터득했다. 맙소사...기료를 어쩌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로를 재설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