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튜닝 시간입니다

한 땀 한 땀 공들인 튜닝의 결과는 평화

by 정윤

평소처럼 다리에 누워있는 유자를 만지다가 유자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내 손에서 나는 로션 냄새도 아니고 아빠의 로션 냄새도 아니고 엄마의 포근한 냄새도 아닌 것이 어쨌든 좋은 향이 났다. 내가 출근해 있었던 시간 동안에도 유자는 좋은 시간을 보냈겠다 싶었다. 이렇게나 유자를 스쳐 지나간 사람이 많다니, 한 숨에 들이마신 냄새에는 수많은 향이 쌓여있었다.


고개를 들고 자는 것이 가능한가요? 네.

유자의 정수리 냄새를 맡다가 문득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어떤 이는 내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는 아직도 나를 떨게 한다. 예를 들면 늦은 시간 부산역에서 다짜고짜 욕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아저씨라던가, 어느 날 내 주변인들에게 내 치부를 모두 밝혀버린 절친이라던가.


그런 상처들이 세워준 울타리는 곧고 뾰족하다. 게다가 문이 없으니 울타리라 할 수 없이 벽에 가깝다. 바로 잡아서 나가고 싶지만 편하게 나갈 수 있는 문이 없다면, 벽을 넘어가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는 그런 용기가 없었고 울타리 속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택했다. 나는 상처 받은 적이 있고 나는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방어적으로 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갇혀있는 것이 갑갑하지 않게 된다.


어느 날은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조금 더 발랄하고, 밤이 무섭지 않았을 테니 더 긴 시간을 활동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쁜 일을 겪지 않았을 나를 가정하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으니, 사라진 그들을 쥐고 있으려 하는 것은 외려 나였다. 울타리를 가득 메우고도 빼곡하게 자란 덩굴은 바닥을 타고 내려온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있는 곳까지 닿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더욱더 좁아지고 나의 방어태세는 나를 더욱 가두어왔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겨우 만나는 나의 지인들은 내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 거냐고 물어왔다.


맞다. 그것도 맞고 새 회사에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면담 시간에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튠을 맞춰보자는 얘길 들었다. 존경하는 사수의 조언이었다.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를 알고 계신 분이다. 자신의 20대가 그랬다며 내가 숨기려 애써도 본인은 알 수 있다고 그랬다. 튠을 하나씩 조절해서 튀어나가는 음이 있으면 다시 또 맞추면 되는 거라고, 그러다 보면 성격적으로 예민한 것의 장점은 살리고 나는 나대로 의도치 않았던 겉모습을 생각할 것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좋은 사람이 내게 남긴 기억은 울타리 너머의 삶을 보게 한다. 방어적인 태도의 반대말은 포용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지나간 시간들을 안을 수도 있다.


집이 엎어져도 유자는 평온하다.


유자와 솜이가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싸우기도 하고, 붙어서 자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게 애들의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를 만큼 고양이들은 평온하다.


나의 시끄러운 생각들과 거칠다고 느꼈던 과거들이 잘 튜닝되어 이제는 좀 온전한 사람으로 섞이고 싶다. 좋은 향기가 났던 유자의 정수리처럼 나를 걱정해준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보며 내가 행복한 시간을 지나왔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길.


온천 아니고.... 서랍장......속의 평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뿌리 깊은 냥무로 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