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넓은 서울 땅에서도 시의원 정도는 해도 될 거라고, 어딜 가서도 친구 하나쯤은 만들어 오는 J가 나를 보겠다며 코로나 검사까지 마치고 부산으로 달려왔다. 휴가 겸, 나를 볼 겸 내려오는 거라며 남자 친구분도 데리고 함께 부산에 왔다.
친구 J는 고시반에서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 이런 친구와는 방을 함께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우린 고시반을 나와 신림으로 향했다. 서로 아는 사람이 없는 신림에서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잠시나마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있다는 게 의지가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종종 왕래했다. 웃긴 점은 같은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함께 공부하진 않았다. 가끔 만나 밥을 먹고사는 이야기나 했다. 더 웃긴 점은 그 사실을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사이의 예고편이었나?
J는 똑똑하고 멋진 친구다. 수영을 10년도 넘게 해서 남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한국어만큼이나 잘했다. 거기에 나는 학위가 하나인 학사인데,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개의 학위를 소화한 더블 학사였다. 의심만큼이나 겁이 많은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병약하기까지 한데, J는 수영과 크로스핏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누구에게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줄 수 있었고, 경호처 시험을 응시해볼 만큼 건실했다.
그러다 나는 몸이 나빠져 시험을 관두고 J는 신림에 남았다. 그렇게 공부를 이어가던 J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로를 바꾸어 지금은 LEET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J에게 스쳐가는 것들이 있었어도 수영은 꾸준히 했다. 언제라도 밀려오고 가득 차 있는 물을 좋아했고 친구의 삶도 그래 보였다. 물에서 나아가야 하는 만큼 바삐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밥을 먹고 부산에서 가장 큰 카페로 가 야외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친구는 내가 긍정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염세적이라 생각해왔다. 염세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게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내 체력은 쓰레기지만 저만큼의 언덕은 오를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쓸데없는 말들은 쓸려나가고, 활기차던 J는 침체된 듯한 지금의 상황이 많이 불안하다고 했다. 그만큼 아픈 곳도 많아졌다. 이것저것 해본 것만 너무 많아 남들보다 늦었단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실패한 인생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인생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를 지워나가고 있는 것뿐이라고 답하자, J는 하나씩 다 겪어보면서 소거해나가는 게 문제라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그게 꼭 나 같아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지 불어버릴 대로 불어버린 내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인생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소거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삶에는 없단 말이야. 지금 겪어보지 않으면 또 이 근처로 돌아와 서성이게 될 거야. "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축축한 눈이 되었다가는 다급히 웃으며 강연 한 번 해줄 생각이 있냐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저 먼 하늘의 구름을 또 쳐다보았다. 우린 같이 끼여있는 삶을 살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떠밀려 다니는 중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보던 하늘이 바뀌어 있었다. 구름이 빠르게 밀려가 파란 하늘 아래 있던 우리는 어느새 먹구름 밑에 있었다.
모든 순간이 제행무상이다. 가고 또 오는 것이었다. 예전엔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는 둥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둥의 비현실적인 말만을 늘어놨는데, 30살이 된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가장 현실적인 말 하나만을 한다. 의지를 가지자는 것이다. 수많은 순간이 오고 또 가고, 그 속에서 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을 안고 겪어보라 한다. 그 속에서도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휩쓸리지 않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고작 그것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도 굴러간다. 바퀴는 힘 없이는 굴러가지 않으며, 의지 없인 방향을 정할 수 없다.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도 그렇다.
한때는 버티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버틸 힘이 없는데, 버티는 것이 삶의 보편적 자세라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삶은 살아지는 것이라기 보단 살아내는 것이지 싶다. 버티고 버텨야 결과를 볼 수 있는 호흡 긴 질문과 답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
브런치를 구독하는 널 위해 여기 남긴다.
J야. 네가 좋아하는 물속에서는 땅 위를 걸을 때보다 한 걸음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겠지. 좋아하기 때문에 인내하는 너의 시간이, 인내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너의 고통이, 그리고 그 고통 뒤에 찾아올 너의 시간을 위해 더 많은 힘을 썼겠지. 겨우 한 걸음이라 정체된 듯해 보일 수도 있고 갑갑할 수도 있겠지만, 한 걸음이 얼만큼일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얘기해보자고.
at 10:56 p.m. EDT on July 20, 1969, the American astronaut Neil Armstrong put his left foot on the lunar surface and famously declared.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