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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Jun 16. 2021

고양이와 어느덧 동년배가 되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솜이와 유자는 2017년 3월 1일 생이다. 이제 고양이 나이로는 4살, 인간 나이로는 32살이 되어 나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챙겨줘야 하는 것이 많은데 언니와 오빠라니, 솜이와 유자는 아직 인간사에 서툰 것이 많 모르는 것도 많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래서 우린 닮은 구석이 많다.

귀여운 아기 유자와 아기 솜이

그런 솜이가 며칠 전 가족들이 보지 못한 사이에 기다란 줄을 먹고는 고통스럽게 토해내며 야단 난 밤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는 3가지 건강 지표를 모두 만족시키며 그날의 걱정을 해소해주었다. 그런데 솜이가 아픈 것을 보며 솜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나대로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여실히 느꼈다.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다. 그리고 딱 고양이만큼만 살고 싶다는 소박한 다짐을 서게 해 준 고마운 솜이와 유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솜이와 유자를 지우고 나면 나의 세상엔 못난 나만이 남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양이만큼만 살겠단 말을 자주 한다. 고양이만큼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양이의 수명만큼 살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고양이가 살아가는 자세처럼 살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처음엔 전자에 가까웠다가 요즘은 후자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인간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을 땐 그랬다. 고양이만큼만 살아보면 이 땅에 더 정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보통의 고양이가 10여 년을 산다고 하니 2017년으로부터 딱 10년 정도가 지나고, 대략 2030년쯤이면 나도 살아볼 만할 것도 같았다. 그러니 솜이와 유자가 있는 동안은 즐겁게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살다 보니 솜이와 유자처럼만 살 수 있다면 2030년이 되지 않아도 나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솜이와 유자는 나보다 훨씬 더 의젓하여 실패해도 일어서고 아픈 티를 내지도 않았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도 스스로를 아프게만 하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이들에게, 솜이유자와 함께 살다 보면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았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워왔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2030년이 되기도 전에 솜이와 유자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솜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나의 고통이 되어 제발 그런 나쁜 일은 일어나선 안된다고 수천번도 더 생각했다.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었다. 내 곁에 더 있어달란 나의 바람이 지극히 나의 입장이라는 것도 솜이 유자에게 지는 빚처럼 느껴져 오도 가도 못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솜이와 유자와 함께 살아야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기도했다.  


더러는 동물은 동물일 뿐이라 정을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겐 동물에 지나지 않는 다른 종에게 이만큼의 시간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지구엔 인간이 빚진 수많은 동물이 있다. 그것이 내 옆의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세상엔 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어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관계를 맺어주고 교감하게 한다.

누군가에겐 하찮은 그 사랑이 누군가를 살리고 있다. 눈과 귀를 닫은 사람들은 보지 못할 기적이 수많은 곳에서 일어다.



얼마 전,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를 만나 고양이는 아기 같단 이야길 나누었다. 고양이는 마치 나이 먹지 않는 아기처럼 계속해서 챙겨줄 것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그렇게 나이 먹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하면 좋겠단 말을 했다. 솜이와 유자는 이제 나의 1년 동안 4살씩 빠르게 인간 나이를 거쳐갈 텐데, 그럼에도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영원한 아기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손이 많이 가도 좋고, 칭얼거려도 좋으니 말이다.


나의 시간을 들이는 것은 빠르게 흐르는 고양이 시간에 대한 나의 사랑이고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솜이와 유자가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다. 더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조금 더 바로 선 내가 되고 싶다.

건강해진 슈퍼고양이 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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