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가 고파서, 먹방을 봤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할 때 적은 일기처럼 인과관계가 이상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건 오늘 있었던 믿기 힘든 사실이다.
유튜브 추천 컨텐츠에 먹방이 올라오면서 나는 먹방에 입문했다. 그 뒤로는 유튜브 생태계 알고리즘이 그렇듯 습관처럼 영상을 클릭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편집한 음식들은 '아는 맛'이기에 더욱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거나 우리의 어른 세대 또한 힘든 시기를 겪었다는 사실은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길에 떨어진 사과 껍질을 먹고 씹다 버린 껌을 주워먹은 때도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때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제는 천장에 매달린 굴비가 유튜브에 주렁주렁하다.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은 이미 충족된 상태에서 더 마른 몸을 가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대리만족하는 수단, 혹은 컴퓨터와 휴대폰이라는 첨단 기기는 있지만 충분한 식비는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입맛 다시게 만드는 일이 바로 먹방이다. 먹방 컨텐츠의 기괴함을 깨달았다. 인간의 3대 욕구인 배설욕과 수면욕, 식욕 중 유독 식욕에 해당하는 것으로 컨텐츠를 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졌다.(*3대 욕구는 학술적 근거가 없는 개념이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기에 사용했다.) 다른 사람이 똥 싸는 모습이나 잠 자는 모습은 영상으로 볼 필요가 없지만 음식만큼은 맛있는 음식과 맛 없는 음식으로 나뉘기에 그렇다. 생각해 보라. 통유리 문이 달린 최고급 호텔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바지를 내리는 모습, 1억짜리 해스텐스 침대에서 코를 고는 모습을 영상으로 대신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제품 소개 영상이라면 모를까.) 굳이 따지자면 시각이나 촉각에 비해 미각이 훨등히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먹방의 기원은 영화 속 밥을 먹는 씬이나 예능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으로 추측한다. 혹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얼룩말을 사냥한 하이에나 다큐일 수도 있다. 아프리카 TV 비제이들은 쉬는 시간에 잠시 밥 먹는 모습을 개인 방송에서 송출했고, 이후 편집된 영상을 유튜브에도 올렸다. 그저 라면을 맛있게 먹던 것을 넘어 요즘의 먹방은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배달 음식을 예쁜 식기에 옮겨 담아 보기 좋게 세팅하는 일에 집중된다. 크로마키를 입히고, 배경에 은은한 조명을 넣어 집중이 잘 되게 만든다. 또한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 것, 입이 큰 것, 의심이 들 정도로 많이 먹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워 구독자 수를 늘린다. 먹는 행위가 단순히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넘어 '보이는 일'이 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귀찮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먹방을 찍는다면 매 촬영이 곤욕스러울지, 그런데도 잘 먹었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먹방도 트렌드가 변화한다. 깔끔한 액자 안에서 최고의 썸네일을 만들기 위해 예쁘게 먹는 영상에 질린 사람들은 서툴게 요리도 직접 하고 대충 차려 먹는 평범한 우리네 모습 같은 먹방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사람들은 아예 극사실적인 것에 매료되었다. '편안해 보이는 연출'이 아니라 정말 '리얼한' 것 말이다. (몰래카메라가 아닌 이상 카메라 뒤에서 일어나는 일 중 리얼한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매일 밥을 먹는 방 안에서, 호들갑 떠는 리액션을 하고, 외출할 때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등의 브이로그 형태가 만들어졌다. 신분을 숨기는 일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기에 눈과 코를 가리기도 한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입을 보여주게 되는데, 입으로 음식물이 들어가는 모습마저 가려지면 만족감이 덜하다는 피드백을 받기 때문이다.
모든 돈 버는 일은 어렵기 매한가지이지만, 숙달된 먹방 유튜버는 상대적으로 노력 대비 아웃풋이 좋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빨리 먹거나 많이 먹는, 자극적인 컨텐츠가 아닌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끼니를 챙기고 먹는 김에 촬영도 하는 것이니 말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내 모습이 공개되는 일에는 굉장한 스트레스가 따를 것으로 예상하나 어쨌든 식욕이 충족되고, 소화된 음식은 몸에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
내가 우려하는 사람은 먹방 유튜버가 아니라 나 같은 컨텐츠 소비자들이다. 나는 오늘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입에 음식을 직접 밀어 넣는 대신, 침대에 누워 먹고 싶은 음식 뒤에 '먹방'이라는 단어를 붙여 검색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도 않고,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다. 돈은 좀 없지만. 외계인이 보면 '지구에 사는 인간은 시각 자극이 배를 불려준다'고 착각할 정도이지 않은가. 내가 심각한 유튜브 중독자이긴 하나, 나 같은 사람이 나 뿐일 리는 없기에 하는 말이다.
먹방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의 모든 컨텐츠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선사하고 때로는 위로를 전하기도 하는 순기능을 지녔다. 그러나 먹방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나머지 그것의 기괴함마저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스스로 하는 강력한 경고이다. 이런 컨텐츠를 소비할 바엔 차라리 컨텐츠를 제작하고, 더 나아가 컨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