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이 선사하는 색다른 시각

치고 빠짐의 미학

by Yoon Park

"좋은 영화에는 좋은 음악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상만으로는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배경의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 등 음악은 영화를 구성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본인의 작품 내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매우 크게 생각하기에 작곡가와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하는 경우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각 작품의 음악의 질이 들쭉날쭉하는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작업물이 많아질수록 더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감독과 작곡가 모두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creen-Shot-2019-07-17-at-8.42.44-AM.png 한스 짐머와 크리스토퍼 놀란


이토록 감독 입장에서 음악은 영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과도 같은 중요한 존재인데, 정작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관람 내내 다른건 다 제쳐두고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이기에, 다른 영화적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작곡자가 원래 의도했던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화음악을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길만한 거리가 너무나도 많은 독립된 장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이 주가 되는 작품들을 제외하곤 등장인물들의 대사처럼 작품을 관통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겠으나, 영화음악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의미를 파헤쳐본다면 영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차이


영화음악은 크게 오리지널 송 (Original Song) 과 오리지널 스코어 (Original Score) 로 분류가 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은 대부분 오리지널 스코어에 속합니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다른 말로 언더스코어 (Underscore) 라고도 불리는데, 가사가 포함된 오리지널 송과 달리 스코어는 가사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배경에 녹아들어 배경음악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리지널 스코어가 영화 속에 효과적으로 녹아들기 위해 제작자들이 어떠한 고민을 하는지 간략히 적어보려 합니다.


rev-247.jpg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을 각색해봅시다.


우리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10대 소년이 길을 잃어 숲 속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숲 속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마치 당장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가 소년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긴 적막이 흐르던 중, 한 마리의 거대한 멧돼지가 침을 흘리며 소년의 눈 앞에 나타납니다. 소년은 멧돼지를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멧돼지를 마주한 시점에서부터 극적인 긴장감은 이미 최대로 고조된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부분에서 감독과 음악감독은 상황의 위급함과 소년의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음악을 바라고 있을 것이고, 작곡가 또한 이전의 적막과 상반되는 높은 템포의 곡을 쓸 것입니다. 작곡가와 음악 감독 입장에서는 음악의 템포, 사용되는 악기 등 고려할 부분이 너무나 많겠지만 설령 좋은 결과물을 내어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도 마지막까지 그들을 괴롭히는 질문이 바로 "어느 시점에서 시작하고, 어느 시점에서 끊어야 하는가"입니다. 만약 곰을 만나는 시점에서부터 음악이 시작된다면 점점 높아지는 소년의 긴장감과 상황의 위급함을 장면 내내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소년이 발걸음을 뗀 이후부터 음악이 시작된다면 소년의 도망으로 인해 급격히 높아질 장면의 템포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음악이 "치고 빠지는 시점" 또한 창작자들의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저는 영화음악이 사진 작품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작가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최고의 "찰나의 순간"을 연구하는 것처럼, 작곡가와 음악감독은 영화음악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과 내러티브를 극대화하기 위해 음악이 시작되고 끝나는 "찰나의 순간"을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몇 번이고 돌려본 영화라 할지라도, 음악이 영화 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감상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장면마다 음악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혹은 어떤 악기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지만 보셔도 분명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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