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에 투자하는 스포티파이의 속내
1년 전 스포티파이에서 플레이리스트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와 약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전부터 음악 시장 내 AI와 빅데이터 기술에 관한 이슈들은 관심 있게 봐왔기에 그분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벌써 1년이 지났지만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현재 스포티파이의 모습에 비추어 글로 남겨볼까 합니다.
2019년 스포티파이는 회사 설립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 발표를 하였습니다. 미국 음악 시장에서 스포티파이가 지속적으로, 그것도 아주 큰돈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관계자라면 쉽게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나 손실과는 별개로 스포티파이는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왔는데요. 매년 꾸준한 구독자/트래픽 증가가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대변해주고 있었고 구독료, 광고 외에 다양한 수익 모델을 구상해 왔기에 스포티파이의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전부터 스포티파이가 지금과 같이 단순히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으로써 서비스를 지속하게 된다면 과연 몇 년 뒤에도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엔지니어 분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스포티파이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지, 또 경쟁사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본론에 앞서 스포티파이 외에 미국에서 흔히 거론되는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들을 한번 나열해보겠습니다.
애플 뮤직
아마존 뮤직 언리미티드
구글 플레이 뮤직 / 유튜브 뮤직
타이달
이 외에도 쟁쟁한 서비스들이 많으나 일단 이 다섯 개의 플랫폼만 놓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다섯 개의 메이저 스트리밍 플랫폼 중 모회사 없이 순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서 운영되고 있는 회사는 타이달뿐입니다. 타이달은 일찌감치 MQA 스트리밍, 즉 무손실 음원 스트리밍과 앨범 독점 선공개 등을 내세워 특정 소비계층을 공략해왔고, 2017년 미국의 통신회사 Sprint가 33%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스트리밍 시장에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세 플랫폼은 애플, 아마존, 구글 소유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타이달과 스포티파이와는 태생적으로 다른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생태계를 그 어떤 회사들보다 더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이 세 회사들에게 있어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은 단순히 수익을 내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 그들의 생태계를 더욱 확장하기 위한 디딤돌 같은 존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탄탄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애플, 아마존, 구글의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해왔고, 음악과 더불어 영화, TV 시장까지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이 세 회사들이 디지털 콘텐츠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확합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세 회사가 콘텐츠 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스마트홈 시장 또한 빠른 속도로 장악해가고 있다는 것인데, 미래 먹거리를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이 회사들의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들
사실 스포티파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생태계도 없는 하나의 외딴섬과 같습니다. 그간 스포티파이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만으로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해온 데에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뿐 아니라 높은 질의 큐레이션 덕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힙합에 관심 있으실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Rap Caviar" 플레이리스트는 2015년에 처음 생성되어 대규모의 구독자 수를 바탕으로 단순히 좋은 음악을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의 성격을 넘어 아티스트에게 성공의 보증수표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명 아티스트들에게는 성공의 등용문, 이름이 알려진 아티스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죠. 지난 몇 년간 음악 시장의 트렌드가 스트리밍으로 빠르게 넘어오면서 "Rap Caviar"같은 플레이리스트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고, 이러한 플레이리스트들을 만들어가는 큐레이터들의 영향력 또한 더욱 커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플레이리스트들이 가진 "맹점"이 있는데, 바로 기계가 아닌 실제 사람이 큐레이션을 한다는 점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큐레이터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인재인데, 스포티파이 같은 회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을 따로 막을 방안이 없습니다. 실제로 "Rap Caviar"를 운영해온 당시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프로그래밍 디렉터 Tuma Basa는 2018년 회사를 나와 유튜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미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한 상태기 때문에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으나, Tuma Basa 같은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가 운영하는 플레이리스트와 회사 차원에서 운영하는 플레이리스트의 퀄리티는 현저히 차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가진 모든 인적 네트워크 또한 유튜브로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미국 음악 시장은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시장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느 회사로 자리를 옮겼느냐에 따라 회사와 클라이언트들과의 관계도 변화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포티파이 입장에서 Tuma Basa의 이직은 뼈아픈 손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Discover Weekly와 빅데이터
스포티파이가 국내 런칭을 하면서 Discover Weekly 플레이리스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Discover Weekly 뿐 아니라 스포티파이 내 많은 플레이리스트들이 이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재생 기록뿐 아니라 타 사용자들의 패턴을 분석하여 개개인에게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스포티파이 입장에서 앞서 말씀드린 플레이리스트의 "맹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로 보입니다. Tuma Basa 같은 큐레이터 한 명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리스트를 알고리즘 화하여 플랫폼 자체적으로 사용자에게 높은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스포티파이 입장에서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빅데이터에 기초한 맞춤형 서비스를 시장 내에서 선점할 수 있겠죠.
스포티파이가 투자하고 있는 빅데이터의 알고리즘화를 통한 플레이리스트 큐레이션은 스트리밍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빅데이터 외에도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 콘텐츠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매년 투자하고 있는데, 이 또한 스포티파이가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이 스마트홈 시장을 확보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현 상황에서, 과연 스포티파이가 알고리즘과 팟캐스트를 통해 몇 년 뒤에도 지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