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어른

by 윤슬

예전엔 어른의 말이 무조건 정답인 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는 되묻지 않고 어른은 설명하지 않았다. 말이 곧 권위였고, 침묵은 예의였다. 그렇게 세상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대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소통의 언어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나는 그 변화 앞에서 한동안 길을 잃었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지금의 어른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요즘 20~30대는 무례하지 않음, 상호 존중, 그리고 감정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카톡으로는 너무 냉정해 보여요”, “그 말은 좀 선을 넘는 것 같아요.” 그들의 말에는 선명한 기준이 있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경계는 분명하다. 그들은 철저히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 하고, 선을 넘는 말에는 주저 없이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한다. 줄임말과 이모지조차 감정을 담은 하나의 언어로 사용하며, 말보다 분위기와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카페에서 젊은 직장인들이 상사의 말투를 고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불편하지?”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말이 다 정답은 아니라는 것, 말의 내용만큼 말의 태도가 중요한 시대임을 나는 조금 늦게서야 배웠다.

반면 우리 세대, 50대 이후의 어른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 인내와 절제를 가치로 여긴다. 부당해도 참는 게 미덕이었고, 연장자의 말은 곧 질서였다. “내가 너만 할 땐 말이야”라는 회고는 아직도 입에 맴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때때로 벽을 만들었다. 아랫세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 말보다 관계, 설명보다 공감이 중요한 시대 앞에서, 나의 방식은 낡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작은아들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사소했지만, 말끝마다 훈계조로 흐르는 나의 말투가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그는 말했다. “엄마는 내 말 안 들어. 그냥 엄마 생각만 하잖아. 그리고 너무 고지식해.” 그 말은 내 심장을 조용히 때렸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를 위해서 말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방식일 뿐이었다. 내 사랑의 언어가 아이에겐 억압이었음을,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판단보다 경청, 설명보다 기다림. 그러자 아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세대의 틈이 좁혀지는 건, 결국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여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어른은 ‘옛것을 지키되, 새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질서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된 언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나의 생각도 전환됐다. 물처럼 흐르되 품격은 갖추고 서서히 스며드는 것. 『도덕경』의 상선약수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배운다는 건 단지 지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이제 말보다 태도로, 가르침보다 배움으로 관계를 열고자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후배들과의 협업에서, 낯선 세대와의 마주침에서 늘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때로는 젊은 이들의 언어가 낯설고, 감정의 결이 쉽게 읽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다름 속에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것임을 배운다.

세대 간 차이는 틈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색의 결일 뿐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존중을 낳고, 경청하는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배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한,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감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이제 숫자만 더해가는 어른이 아니라, 마음을 키워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배우는 어른. 그것이 지금,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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