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무라 미나에의 모국어-외국어와 번역에 관한 관점들
水村美苗、 『私小説 from left to right』、ちくま文庫 、1995。
Minae Mizumura, "An I-Novel", (trans. Juliet Winters Carpenter), Columbia University Press, 2021.
꽤 오래 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하는 미국-일본 관계를 다뤄왔던 하와이대학의 요시하라 마리(1969-)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최근작( 『不機嫌な英語たち: What I write about when I write (mostly) in Japanese』, 2023)을, 미즈무라 미나에(1951-) 선생이 1995년 발표했던 자전적 소설을 모델로 한 '바이링구얼 사소설'이라고 소개했다.
* 두 사람은 모두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거나 정착했으면서도 영어 뿐 아니라 모국어로도 지속적인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거의 30년 전, 일본어 특유의 세로쓰기 방식 대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데다 본문에서 영어와 일본어 두 언어가 수시로 교차하는 소설을 기획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파격이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그렇지만 작년에 출간된 "불편한 영어들"의 본문은 기존 관행대로 일본어 위주의 세로쓰기 방식이고, 중간중간 별도로 삽입된 영어 에세이만 가로쓰기로 편집되어 있다.)
일찍이 이중언어 소설을 집필한 의도에 대해 미즈무라 선생은 "영어와 영어가 아닌 언어의 비대칭성에 더해, 다른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일본어의 물질성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며, “비영어권 작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독자들이 영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영어로 된 부분을 그대로 두고, 일본어 부분만을 한국어나 벵골어, 프랑스어 같은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이중언어 형식을 재현할 수 있겠지만, 유일하게 그렇게 할 수 없는 언어가 바로 영어"라고 강조했다. (『日本語が亡びるとき―英語の世紀の中で』, p.118)
그럼에도, 소설과 평론, 에세이를 오가며 널리 평판을 얻은 미즈무라 선생의 일본어 저작들이 영어권을 비롯한 다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영어로 번역은 불가능할 것“이라던 "사소설”도 지난 2021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애초에 두 언어가 공존하는 본문을 어떤 식으로 구성했을지 궁금했지만, 번역을 맡은 카펜터 선생은 역자서문을 통해 너무도 산뜻하게 "원작에서 영어로 표기된 부분에는 다른 서체를 사용하는 것(The solution I devised… was to use a different typeface)"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이후 시카고 대학에서 주최하는 일본어 문헌 번역상-William F. Sibley Memorial Subvention Award for Japanese Translation-을 수상했다고 한다.)
다른 언어들을 상대로 영어가 갖는 비대칭성이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한편, 예전에 "장미의 이름" 일본어판에서 원작의 라틴어 문장들을 하나같이 (별도의 의미 해석 없이) 카타카나로 단순 음역해 놓은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고, '번역'이라는 범주에는 미세하면서도 무수한 갈래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