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82년생 중국인 아티스트와 정체성의 근본

영화감독 클로이 자오와 피아니스트 랑랑이 말하는 당시唐詩와 셰익스피어

by yoonshun

"햄넷Hamnet"(2025)의 클로이 자오(Chloé Zhao, 趙婷, 1982-) 감독은 베이징 출신으로 영국에서 명문 사립 중학교에 다녔고, LA에서 고등-대학 과정을 마친 뒤 뉴욕대NYU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의 아버지는 베이징 기반의 국영 철강기업(首钢集团有限公司) 대표이다.


영어권 문학 고전 중의 고전인 셰익스피어를 다룬 영화를 연출한 중국 출신의 여성 감독. 얼핏 잘 연결되지 않을 것같은 범주들을 아우르는 클로이 자오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중국 고대의 시와 문장들을 외워 낭송하는 게임을 하며 중국의 옛 문학을 익혔다고 한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어릴 적 배웠던 것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오 감독과 동갑내기 중국인 피아니스트 랑랑(郎朗, 1982-)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랑랑은 열 다섯 살에 입학한 커티스 음악원 재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개리 그래프먼(Gary Graffman, 1928-2025)의 소개로 커티스 재단의 이사이자 영문학 교수 출신의 리처드 도란(Richard Doran)과 교류하며 서구문화와 영어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한 조언을 얻는다.


이 때부터 랑랑은 도란 선생의 가이드에 따라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을 소리내어 읽는 연습을 시작했다. 선생은 먼저 문장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어서 리듬과 운율meter을 이해하며 낭독하는 과정이다. 특히 영어권 시 문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Iambic pentameter"는 셰익스피어가 거듭 활용했던 리듬이기 때문에 유념해서 익혀둬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선생의 말씀은 2008년 출간된 랑랑의 자서전에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단 그 운율을 익히고 나면, 셰익스피어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랑랑은 햄릿의 모든 문장을 읽어 나가며 아직 의미를 잘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음에도 장면 전환이나 어조의 변화 같은 흐름을 온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배웠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화에서 모차르트의 프레이즈를 떠올렸다"고 할 정도로, 셰익스피어를 통한 학습은 랑랑에게 또 하나의 음악 공부이기도 했다.


사실 랑랑의 시 낭독 공부는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선양에서의 어린 시절 피아노 교사였던 펑Feng 선생이 낭송해 주던 당시唐詩들에 대해 회상한다. 소년 랑랑의 우상이었던 손오공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당나라 때여서 이 시대의 시가 그에게는 더욱 특별한 문장들이었던 듯하다.


국경의 초월과 문화의 이동이 흔해 보이는 시대일수록, 상대의 낯선 문화에 적극적으로 스며들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자신의 정체성과 근본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시대이든 중요한 가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나아가 그 과정을 뒷받침하는 토대에서 찾아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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