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모국어로’ 성장한 중국인 스타 피아니스트

랑랑, “건반 위의 골든보이, 랑랑”

by yoonshun

원작

Lang Lang, David Ritz, "Joirney of a Thousand Miles: My Story", 2008.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辽宁省)의 선양시(沈阳市) 출신 피아니스트 랑랑(郎朗, 1982-)은 열 살도 되기 전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中央音乐学院에 입학했고, 1997년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The Curtis Institute of Music에 다니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공군 군악대원이던 아버지(郎国任, 1953-)를 따라 부대 내 가족 숙소에서 성장하며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책을 가까이 했던 랑랑은 “톰과 제리”의 유명한 피아노 연주 에피소드에 감동하고 ‘트랜스포머’ 장난감 시리즈를 좋아하며, ‘손오공’이 되고 싶던 ‘80년대 중국의’ 흔한 어린이였지만, 피아노 연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 아래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던 ‘예비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열일곱살이던 1999년, 랑랑은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 예정이던 앙드레 와츠(André Watts, 1946-2023)를 대신해 3만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 날의 연주는 20세기 후반 서구 세계에서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중국인 청년, 랑랑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호쾌한 스타성과 유명세만큼이나 여러 방면의 견제와 비판을 견뎌야 했음에도, 그는 “너의 모국어는 음악”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새기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커티스 재학 중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손목 부상으로 한동안 피아노 연습을 쉬어야 했던 시기에는, 중국 사상과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삶의 ‘균형’을 갖추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일찍이 중국 시절의 은사 펑 선생이 알려주던 당나라 시대의 시와 고전들을 통해 “손오공이 활약하던” 시기이자 “중국 문화의 황금기”를 떠올리며 상상력을 키웠다는 랑랑은, 셰익스피어의 리듬과 운율을 소리내어 읽으며 낯선 미국 문화와 영어를 ‘장착’해 갔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견뎌낸 부모 세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결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랑랑은 스타 피아니스트가 된 이후에도 줄곧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와 캠페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미래 세대를 위한 후원과 교육에도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설립한 ‘랑랑재단(Lang Lang International Music Foundation)’은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커버하는 단체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랑랑이 서른 살 무렵 (전문작가 David Ritz와의 협업으로) 영어권에서 출간한 자서전의 제목은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인 노자(기원전 604-531)의 ‘도덕경’ 영어 번역본의 한 구절인 “천릿 길도 한 걸음부터(A journey of a thousand miles begins with a single step.)”에서 유래했다. (한국어판 제목에서 이 부분이 생략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세계 무대에서도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또 중국인이면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친화력과 생동감을 나누는 연주로 관객들을 기다리게 하는 랑랑의 가치에 대해, 그동안 깊이 들여다 볼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연주자라고 해서 혼자만의 예술 혼에 심취하거나 경쟁의 한 가운데서 긴장감 가득한 어둠의 기운을 발산하는 이들보다는, 언제나 아이들에 둘러싸여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랑랑과 같은 사례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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