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매덕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Fiona Maddocks, “Goodby Russia: Rachmaninoff in Exile”, 2023.
1873년 제정 러시아의 서남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정교의 정신을 담아내는 다수의 음악 작품을 창작하는 한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도 활발한 무대 활동에 나섰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1873-1943)라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전해지는 견고한 러시아 전통은 그가 일생동안 ‘러시아 음악’을 추구했다고 스스로 강조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일흔 살 생일을 앞둔 1943년 미국 시민권을 발급 받았고, 얼마 후 서부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즈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1차세계대전 발발(1914)과 러시아 혁명(1917), 대공황(1929), 히틀러의 나치당(1933), 2차세계대전(1940년대)으로 이어지는 서구 역사의 흐름과 그의 삶이 어떻게 중첩되어 갔는지 호기심을 갖게 한다.
런던 출신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성 저널리스트 피오나 매덕스는, 바로 이런 의문들을 바탕으로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를 떠나 미국시민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40년 간의 기록들을 추적한다. (어떤 의도인지 한국어판 제목이나 편집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망명 시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본래 취지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 듯하다.)
19세기 러시아와 유럽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20세기 초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의 주요 도시 오케스트라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 재즈와 자동차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디. 나아가 그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레코딩과 라디오, 영화음악의 중심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진 ‘전환기의 상징적’ 아티스트였던 반면, ‘대중적’인 흐름에 편승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꾸준히 투어하며 연주 무대에 섰던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가 작곡가를 겸하던 19세기 유럽의 음악 전통을 계승하는 사실상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
1950년을 경계로 전세계 주요 도시들에서 (오늘날까지도) 수없이 신설되어 온 콩쿠르 무대를 중심으로 경연을 통한 경쟁적 순위 획득이 대세가 돼 버린 클래식 음악 연주 ‘업계’에 익숙해진 시대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연주자와 음악가, 작곡가의 정체성은 지금과는 꽤 다른 범주에 놓여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미국에 정착해서도 러시아인들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러시아인 비서와 의사,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계 상점들을 오가며 생활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언어 역시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모국어인 러시아어와 유창한 프랑스어를 주로 구사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미국에 급증했던 다양한 민족들의 이민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영위되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단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