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안, “‘제국일본’과 영어, 영문학”
“... 남자에게만 문호가 개방된 중학교는 고등학교를 경유하여 제국대학으로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의 입구였고, ‘영어 능력이 입신출세의 허가증’이었다. 또한 “서양의 지식을 척도로 하는 실력주의의 시대”에 있어서 영어는 남성 엘리트에게 필수적 교양이었다.” (p.82)
“수험 잡지인 ”영어 연구“는 ... 영어 교육을 위한 잡지였으면서도, 영어 능력의 향상 뿐 아니라, ’제국 일본‘을 담당하는 엘리트로서의 정체성 형성의 역할도 했던 것이다.” (p.116)
“1923년 10월부터 ‘영서 100권 독파주의’가 제창되어, 1923년 12월부터 1929년 1월까지 ...‘영서 100권 독파회’란이 만들어졌다.” (p. 118)
“”영문학총서”는 1921년부터 1932년에 걸쳐서 …발행되었으며, 100권에 이른다. … 영어를 학습하면서 동시에 영문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의 장점은, 편집 주간인 오카쿠라 요시사부로의 영어 교육론과 이치카와 산키의 영문학이 결부된 결과인데, 당시는 영문학 연구자가 동시에 뛰어난 영어 교사이기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문학은 일본인 엘리트 남성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목이었다.” (p.122)
“영국에서 영문학이 아카데미즘에서 확고한 제도적 지위를 얻은 것은 1차 세계대전 후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는 이미 아카데미즘에서 영문학이 확고한 지반을 얻고 있었음을 주석자의 일람표는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일본에서는 영어 교육의 시간 수가 많았고, 고도한 영문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던 것은 중학교 및 고등학교 등의 남자 엘리트 교육기관에서였다. 이 점도 원래는 영문학이 ‘빈민을 위한 고전’, 여성을 위한 교양으로 간주된 영국 본국과 다른 점이다.” (p.155)
"숭실, 연희, 이화여자 전문학교는, 기독교계 학교라는 점, 이들 학교의 학생들이 3 1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영어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학교들은 모두 대학설립운동을 전개했는데, 총독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대학설립운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설치했음이 선행 연구에서 지적되었다." (p.168)
"...총독부 측에서는 경성제국대학과 같은 "최고 학부를 건설하여 식민지 통치의 문화 존중을 내외에 강조하는 상징 효과를 활용하는 한편, 또 한편에서는 식민지의 최고 엘리트를 체제내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인은 서구 문명의 불완전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 '일본적 근대' 대신에 '서구적 문명'과 직접 연결된 기독교계 학교를 환영했다. ...따라서 경성제국대학도 또한 영어학 영문학 강좌를 설치하여 기독교계 학교를 견제하고, 또한 구미에 유학하는 조선인을 체제 내에 유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p.172)
윤수안, “‘제국일본’과 영어, 영문학”, 윤수안, 고영진 옮김, 소명출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