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화 매개의 동아시아 교류

상하이-도쿄 문화교류의 거점 <우치야마 서점> 의 과거와 현재

by yoonshun


메이지 시기 오카야마현 출신의 우치야마 칸조(内山 完造, 1885-1959)는 서른이 되기 전 1913년 아내 미키(美喜)와 함께 상하이로 건너가 일본의 한 제약회사 출장 판매원으로 일했다.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우치야마 부부는 상하이의 일본YMCA 회원으로 활동하며,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현지의 일본인 엘리트들과 두루 교류할 수 있었다.


출장 업무가 많던 남편은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자택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그리스도교 관련 일본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손님 중에는 일본인 뿐 아니라 일본에서 유학한 중국인들도 점차 늘었고, 수요에 따라 종교서적 이외에 문학전집을 비롯한 교양서들도 두루 판매하게 되었다. 1917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우치야마 서점(上海内山書店)의 초창기 모습이다.


상하이의 서양음악 수용사(『楽人の都・上海: 近代中国における西洋音楽の受容』, 1998)를 집필했던 에노모토 야스코(榎本泰子) 선생의 또 다른 책(『上海 - 多国籍都市の百年』, 2009)에서 일본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우리에게는 1932년의 '훙커우 공원'으로 익숙한) 훙커우(虹口) 지역의 "우치야마 서점"에 관한 부분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서 당시의 메모들을 찾아보았다.


1900년대 초 일본 센다이로 유학했던 루쉰(魯迅, 1881-1936)이 이후 이 서점 근처에 거주하며 우치야마와 교류했던 일화도 흥미로웠고, 1935년 우치야마의 동생(嘉吉)이 도쿄에 중국서적 전문 서점을 연 이후 지금까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중국/아시아 서적 전문서점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부분이다.

☞우치야마 서점 홈페이지


서구문화를 매개로 하는 동아시아인들의 교류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긍정적 관점에서든 비판적 관점에서든)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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