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W. Shakespeare, “The Merchant of Venice”, Signet Classic Edition, 1965 (2nd revised edition, 1998).
플라톤의 “국가”를 영어로 번역한 고대철학 연구자이며 일생동안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가르쳤던 프랜시스 콘퍼드(1874-1943)의 유작 에세이집 중 “천체의 음악(The Harmony of the Spheres, 1930)”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눈에 띄는 부분은 그가 철저히 ‘영국 문학’의 흐름 속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콘퍼드의 제자로 영국의 그리스 철학 연구 계보를 이어간 거스리(W. K. C. Guthrie, 1906-1981)는, 스승에 대한 경의와 찬사를 담은 애정어린 서문에서, 그야말로 콘퍼드의 진가가 담겨있는 글로 “천체의 음악”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콘퍼드는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을 중심으로 ‘당연히’ (또는 흔히) 수학적이고 과학적 접근으로 연결될 법한 ‘천체의 조화’라는 이론에서 ‘감정’의 요소가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을 지적하며, 진리의 바탕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1596-8)’ 5막에 등장하는 로렌초Lorenzo와 제시카Jessica의 대화를 길게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글에는, 밀턴(John Milton, 1608-1674)과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가 노래한 음악의 조화에 관한 구절을 비롯해 성서와 그리스 신화, 단테 등을 레퍼런스 삼아 우주에 대한 ‘감성적’ 접근에 무게를 두어야 할 근거들을 채워간다.
십여 년 전 처음 (한국어 번역본으로) 이 글을 읽었을 때만 해도, (아무런 주석도 붙어있지 않은) 이렇게 현란한? 인용문들의 출처나 연관성을 세세하게 알아보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우연히 다시 읽으며 창고에 잠들어 있던 “베니스의 상인”까지 함께 펼쳐보게 되었다. 2013년 맨해튼 여행 중 스트랜드 서점에서 중고책으로 3달러에 구입해 둔 펭귄북스의 시그넷 클래식판이다. 미국인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고판이다 보니, 현대 미국영어와 다른 세세한 표현이나 어휘마다 일일이 주석을 표기해 둔데다, 이해를 돕기 위한 전문 연구자들의 상세한 해설과 주제별 참고 문헌 목록이 첨부되어 본문보다도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미국인은 아니지만, 같은? ‘비영국인’ 입장에서 꽤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자료이다.
한편으로, 콘퍼드를 비롯한 20세기 초중반의 영국인들에게 로렌초와 제시카는 (마치 우리나라의 이몽룡과 성춘향처럼?)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들일 수 있었겠지만, 21세기 한국인 독자 입장에서, 콘퍼드의 에세이들에는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도 더 많은 주석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득 ”오늘날의 미국 대학생들에게 20세기 옥스퍼드 제도에 대해 설명하기란,고대 로마의 역사를 가르치는 과정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라고 했던 피터 브라운 선생의 토로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점이다.)